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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시즌 끝난 출판계|독서 계절도 없는 「사철불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올 가을 「독서의 계절」에도 책이 팔리지 않았다. 출판계의 계속되는 불황을 한 출판관계자는 「4철 불황」이라고 표현했다. 책이 잘 팔리는 계절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출판경기는 대개 신학기 초·독서시즌 그리고 크리스머스를 전후한 연말에는 좀 팔리는 시기로 꼽히고 여름철에는 「여름을 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올해는 지금까지의 경기로 봐서 연말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출판계의 전망이다.
서울시내 대형서점 영업담당자들에 따르면 금년의 출판물판매실적은 작년에 비해 20∼25%이상 떨어졌다.
교보문고 곽인수씨(32·영업1과장)는 『한마디로 여유가 없는 것 같다』면서 예년에는 가을학기가 시작되면 학습참고서류라도 많이 팔렸지만 대학본고사가 폐지된 후부터 참고서코너마저 썰렁해졌다는 것.
이대 앞 E서점의 이광우씨(32)는 『대학생 아르바이트 금지 후 학생들의 구매력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학교주변에는 교재복사전문점이 성시를 이루고 있다』면서 대학가 서점들은 대학생 증원에 관계없이 불황을 겪고 있다고했다.
중앙도서전시관 도서상담역 오순희양(28)은 젊은 층의 독서형태가 점차 「무거운 책」은 안보는 경향도 출판불황의 한 원인이 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오양에 따르면 서점을 찾는 직장인들도 고전이나 문학서적보다는 ▲유행적인 것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것 ▲당장 업무에 필요한 경제이론서 등을 찾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독서형태는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데 최근 전 제세산업대표 이창우씨가 쓴 『옛날 옛날 한 옛날』이 계속 1위를 누리고 있는 것도 이러한 현상의 한 단면이다.
소설류 가운데서도 꾸준히 팔리는 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소설류와 비교해서 판매부수 면에서는 현저한 차이가 난다고 종로서적의 한 관계자는 전했다.
이 때문에 출판업계의 수금실적도 극히 저조해 K출판사가 최근 억대의 부도를 내는 등 출판계 곳곳에서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
한길사 김언호씨는 불황타개를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해보자는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면서 한길사는 우선 『책을 갖고 독자들에게 접근하자』는 영업방침을 세웠다고 했다.
김씨는 시간에 쫓겨 서점에 들르지 못하는 봉급생활자들을 위해 도서목록 우송, 방문판매제 등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출판사·서적상의 불황은 전반적인 경기퇴조와 구매력 감소에 우선 깊은 관계가 있겠지만 도서발행·유통의 구조에도 문제점이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출판문화협회 이경훈 사무국장은 책이 잘 팔리지 않는 것이 『불경기 탓만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하고 모든 문화산업은 유통구조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으면 올바르게 향상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출판계는 수년 전부터 유통구조의 근대화·대형화를 논의해왔지만 아직 발족을 못시키고있는데 최근 정부의 문화진흥방안의 하나로 이 문제가 거론되고 있어 상당한 관심을 모으고 있기도 하다.
대형유통기구가 생기면 우선 경영합리화와 영업비·광고선전비 등의 절감으로 인해 도서가격의 적정화가 이뤄질 수 있고 도서출판에 필요한 각종 정보의 수집·분석·평가에 도움이 될 것으로 출판인들은 전망하고있다. 그러나 출판의 활성화는 책의 내용과 새로운 독자층의 개발에 있다.
말에게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듯이 만인의 가슴을 파고드는 한 권의 책이 필요한 것이다. <김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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