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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이 중국 일부지만 베이징 뜻대로 할 수는 없는 일”

중앙일보

입력

지난 3일 사이먼 영 교수를 인터뷰하러 홍콩대학으로 택시를 타고 가는 길은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택시 기사는 “저 미친 놈들(시위대) 때문에 돌아가야 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당신 같은 외국인들이 불편을 겪어 창피하다”고도 했다. 반면 홍콩대학에서 만난 대학생 민디 첸(20)은 “베이징 정부는 부당한 일을 했다. 시위대는 다른 수단이 없기 때문에 도로를 점거한 것”이라며 옹호론을 폈다.

일국양제 체제하에 홍콩의 법과 정치 시스템을 오랜 기간 연구해 온 사이먼 영 홍콩대 법대 교수는 “홍콩 행정장관 선출방식을 창의적으로 개선하면 양측의 견해를 모두 포용할 수 있다”며 “완벽한 민주주의는 아니더라도 유능하고 효율적인 통치가 이뤄지면 대다수 홍콩 주민들은 수긍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은 사회주의 중국의 일부다. 홍콩의 민주화 요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일국양제는 근본적으로 갈등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1997년 홍콩 반환 때부터 계속 그래 왔다. 지금의 홍콩을 지배하는 법적 도구는 영·중 공동선언(Joint Declaration)과 기본법(Basic Law)이다. 공동선언엔 ‘주기적으로 선거를 한다’는 얘기가 있고, 기본법은 ‘1인 1표제’를 명시하고 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됐을 때 홍콩 사람들은 사회주의 시스템으로 들어간다는 생각보다 ‘이제 영국의 총독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지도자를 뽑게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엄청난 희망이 있었다. 지난 8월 31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의 결정으로 그런 희망이 무너졌을 뿐 아니라 중국 정부에 속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갖게 됐다. 중국 정부는 홍콩 문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해 왔다. 90년대에 기본법이 논의될 때부터 1인 1표제 얘기가 나왔는데 2017년 선거를 앞두고 막판에 이르러 이런 억압적인 방안을 내놓으니 시위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역사적인 측면을 이해해야 한다. 홍콩이 중국의 일부라고 중국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공동선언과 기본법에 2047년엔 완전히 중국과 통합한다고 돼 있지 않나.
“많은 이들이 그 부분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기본법 5장에 보면 ‘사회주의 시스템은 홍콩특별행정구에서 통용되지 않을 것이며, 자본주의 체제가 (97년부터) 50년 동안 남아 있을 것’이라고 돼 있다. ‘50년이 지나면 사회주의 중국의 일부가 된다’는 조항은 없다. ‘50년’이라는 단어가 부정형으로 쓰인 것이다. 기본법은 중국이 동의한 중국의 법이다. 이 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홍콩에서 현재의 시스템이 계속되는 것이 타당한 법적 해석이다. 사실 이 법을 논의한 덩샤오핑은 50년이 지나면 중국이 자본주의에 가까운 방향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기 때문에 홍콩과 합쳐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어떤 사람들은 영국이 150년 동안 식민통치를 한 것에 비하면 지난 17년간 중국은 홍콩을 호혜적으로 운영해 왔다고 한다.
“영국의 홍콩 통치는 시간 제한이 있었다. 또 전 세계적인 탈식민지화 바람 때문에 영국은 물러갈 수밖에 없었다. 무게중심이 다른 논쟁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홍콩은 중국에 반환될 때 ‘이제 우리 손으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있었다. 일국양제는 홍콩에 자치를 허락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국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면 홍콩은 중국의 여느 도시와 다를 게 없게 된다. 학문과 언론의 다양성, 국제적인 도시로서의 지위도 잃게 된다.”

-홍콩 행정장관 선출 방식은 어떻게 바뀌는 게 좋을까.
“8월 31일 전인대 상무위가 결정한 안은 중앙정부가 후보 선정 과정에 너무 깊게 관여하게 되는 안이다. 그냥 중국 마음대로 하겠다는 너무 작위적인 안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하면 중앙정부의 뜻을 관철하면서도 대다수 홍콩 주민의 신뢰를 받을 수도 있다. 베이징의 선택에 홍콩이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백지 투표를 허용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지금 시위대는 민주 진영 후보가 적어도 한 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베이징이 최종 후보 3명을 모두 선택한다 하더라도 백지 투표가 많아 50% 득표율을 넘지 못하면 선거는 무효가 된다. 이렇게 되면 베이징 정부는 그냥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을 앉히는 게 아니라 홍콩 주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을 후보로 내세울 인센티브가 생긴다. 또 다른 아이디어는 1차 투표의 후보군을 늘리는 것이다. 지금은 5명이 출마하면 베이징이 원하는 3명으로 압축하겠다고 해서 시위가 일어난 것 아닌가. 지금은 대부분 재계 인사들인 25만 명이 1200명의 선거인단을 선출한다. 그 25만 명 베이스를 다양하게 넓히자는 것이다. 여러 가지 중도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있다.”

-그런 아이디어들을 베이징 정부가 받아들일까.
“어려움이 있겠지만 만약 베이징이 아무것도 안 받겠다면 다시 거리 시위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시스템 자체가 신뢰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행정장관 선출이 주민의 이익을 위한 게 아니라 베이징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투표 자체를 할 필요가 없다.”

-이번 시위로 베이징 정부가 8월 31일에 결정한 안을 바꿀까.
“전혀 그렇지 않을 거다. 시위대는 그걸 원하지만 비현실적이라고 본다. 다른 중도적인 방식을 강구해야 한다.”

-홍콩 정부의 람 정무사장이 학생 대표와 대화한다던데.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사실 지금의 홍콩정부는 뭘 제안하고 양보할 여력이 없다. 대화를 한다면 두 단계가 필요하다. 첫째, 이번 사태를 일단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당장 누가 처벌받을 것인가. 경미한 범죄라 할지라도 도로 점거 시위는 불법이다. 그렇다면 시위대를 사면할 것인가. 또 최루탄을 발포한 경찰은 어떤 처벌을 받을 것인가. 그렇게 감정적인 측면이 가라앉아야 정치 개혁을 위한 논의의 장이 열릴 것이다. 홍콩 정부의 대화와 제안으론 부족하다. 차라리 전인대 상무위가 나서 모종의 약속을 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8월 31일의 조치가 향후 바뀔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다든가. 이번 갈등의 이유 중 하나가 많은 홍콩 주민이 베이징 정부의 안이 영원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 이번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꼭 행정장관이 아니더라도 홍콩 정부의 인사들을 좀 갈아치운다든지…. 그게 이번 사태의 긍정적인 교훈이 되길 바란다.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좀 유능한 인사가 홍콩 정부에 있어야 한다.”

-량전잉 행정장관은 무능력한가.
“그는 최고 수준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홍콩의 이해를 위해 일하고 있지 않다는 공감대가 있다. 그가 중앙정부에 보낸 보고서나 경찰의 최루탄 발포 조치 등도 한심하다. 선거 때부터 그는 ‘신뢰할 수 없는 늑대’라는 별명을 얻었다.”

-능력 있는 사람이 장관이 되면 민주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더라도 홍콩의 마음을 얻을까.
“그렇다고 생각한다. 능력과 더불어 카리스마도 문제다. 민주화의 나팔을 불지 않더라도 인권을 존중하고 안정적인 행정 능력을 보인다면 대다수 홍콩 주민들은 수긍하고 지지할 것으로 본다. 중국 정부에 홍콩의 요구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완벽한 민주주의가 아니어도 수긍할 것이다. 문제는 그런 걸출한 인물이 현재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홍콩 행정장관은 기피직이다. 베이징에 홍콩의 뜻을 잘 전달하고 잘 소통하면서도 베이징의 수하에 들어가지 않을 그런 리더가 필요하다.”

홍콩=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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