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의 평화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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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아랍·중동정세는 온건파주도의 체제하에서 비교적 안정을 유지한다. 반대로 과격파의 목소리가 높고 행동이 거칠어지면 유가에까지 영향을 줄만큼 불안은 고조된다.
사다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던진 최대의 불안요소라는 것도 미국이 뒤를 밀고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주축으로하는 온건파주도체제의 붕괴가능성이다.
그러나 지금 페르시아만지역과 워싱턴등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집트 대역으로 등장하여 온건파주도 체제는 붕괴의 위기를 극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어쩌면 서방세계 모든 사람들의 숙원인 중동평화의 실마리까지 찾을지도 모른다는 낙관적인 생각이 든다.
새삼스러운 설명이 필요없는 일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이 주선한 이집트-이스라엘의 캠프데이비드합의와 그것을 토대로한 이집트-이스라엘 단독평화협정에 반대하여 이집트와는 단교까지 한바있다.
미국의 7O년대의 중동전략의 발판이 왕정하의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 이스라엘의 친미주축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사우디아라비아의 반미진영 가담은 미국의 중동정책뿐 아니라 중동의 평화전망에도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사우디아라비아를 친미노선으로 복귀시긴 배경은 첫째는 미국상원이「레이건」행정부의 대 사우디아라비아 AWACS(조기공중경보기)공급을 승인한 사실이고, 둘째는 「사다트」라는 안전판 없는 아랍·중동에서 시리아·리비아·알제리 같은 친소과격파가 정세의 주도권을 장악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경각심이라고 할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한편으로는 미국의 조기공중경보기 구입의 조건으로 유사시에는 미국에 사우디아라비아 기지사용을 허가할 것을 호의적으로 검토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8개항의 아랍-이스라엘 평화안을 내놓았다.
사우디아라비아 평화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랍국가들이 이스라엘의 존재를 승인하고 협상대상으로 인정하며, 이스라엘은 67년 전쟁에서 점령한 아랍 영토에서 완전히 철수한다는 것이다. 관심의 초점인 팔레스타인 문제에서는 성지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한다고 되어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런 평화안을 아랍국가들의 대부분과 미국이 「좋은협상의 출발점」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사다트」 사후의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결정적인 안정요누및 온건세력의 지도국의 역할을 맡을 길이 열린 것이다.
이집트-이스라엘평화조약에 따라 이스라엘은 82년4월까지 시나이반도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되어있다. 그러나「사다트」의 죽음으로 이스라엘의 태도는 동요를 보이고 정세여하에 따라서는 협정이행을 지연시키거나 전혀 않을 가능성도 없지않다.
미국의 고민은 여기 있다고 하겠다. 이스라엘에는 이집트와 맺은 평화협정의 이행을 위해 설득과 압력을 병행하면서 아랍·이스라엘간의 포괄적인 평화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제안의 틀을 살려나가는 일이 그렇게 용이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아랍·이스라엘 사이에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상호신뢰다. 그러나 아직은 양자간의 직접대화나 교섭으로 신뢰를 구축할 방도는 없다.
미국은 소련의 아랍·중동영향력팽창의 기도에 직면하여 일을 서두르고 싶은 충동이 일겠지만 시간을 가지고 아랍·이스라엘간의 거리를 우선 좁히는 일에서 중동의 항구적인 평화롤 달성하는 길고 힘든 여로에 올라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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