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숙의 ‘新 名品流轉’] 3000원 들고 입문한 고미술 수집 세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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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호 29면

개인 컬렉터로는 드물게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소장품전을 연 조병언씨는 독학으로 한국미를 깨쳤다. 전시장 들머리에 내놓은 도편들을 담은 함지박이 그의 교과서였다. [사진 조병언]

‘여자와 옹기그릇은 밖으로 돌리면 깨진다’는, 꽤 오래 한국 사회에 통용되던 속담이다. 21세기에 무슨 고리탑탑한 소리냐 하겠지만 고미술 쪽 사람들에겐 아직 유효한 조언으로 꼽힌다. 유물을 손에 넣은 수장가들은 자신의 컬렉션을 집 밖으로 일절 내돌리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안다. 남들 눈에 띄면 흠이 되고, 값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고미술품 전시 기획이 까다롭고 품이 많이 드는 까닭이다.

지난달 19~28일 서울 팔판동 한벽원미술관에서 열린 ‘우리 혼, 치유의 미를 말하다’는 특이하게도 ‘조병언 컬렉션 특별전’이란 부제를 달았다. 개인 컬렉터가 제 이름을 달고 소장품 대부분을 내보였다는 점에서 화제가 됐다. 조병언(60·글래스홀딩스 대표)씨는 30년 전 당시 돈 3000원을 주고 산 ‘청화백자 양념단지’로 고미술 수집에 입문했다.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사업을 하면서 독학으로 한국미에 눈떴다는 점이 재미있다.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물건을 보이지 않고 오로지 스스로 묻고 깨친 안목으로 130여 점의 다양한 유물을 모았다.

전시장 들머리에 놓인 함지박이 조 대표의 교과서였다. 그 안에는 산산조각 난 다양한 모양과 재질의 사금파리들이 모여 있었다. 여러 도요지에서 주워 온 도편(陶片)이다. 깨진 사기그릇 조각을 수십, 수백 번 보고 만지고 느끼며 퍼즐을 맞춰 가듯 청자·백자·분청·토기에 깃든 미감을 제 것으로 체득했다. 하나하나 깨쳐 갈 때마다 즐거워서 공부를 멈출 수 없었다고 한다.

조병언 컬렉션은 ‘유어예(遊於藝)’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조 대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예에 노닐었다. 공자가 했다는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최종 경지에 그는 저절로 도달한 모양이다.

그 한 증표가 전시 마지막 날 열린 기증식이다. 조 대표는 모교도 아닌 서울대 박물관에 도자 9점, 철물 22점 등 소장품 31점을 아무 조건 없이 기증했다. 국립대 박물관에 걸맞은 품격을 이뤄 갔으면 하는 마음의 표시였다. 평생 모으기만 했지 한 번도 팔아 본 적이 없는 그는 “곱게 기른 딸을 시집보내는 심정이었는데 신랑이 훌륭해 기분이 좋다”고 했다.

이 땅의 미감에 앓다 간 혜곡(兮谷) 최순우(1916~84) 선생은 “함께할 수 없는 아름다움은 때로 아픔이 된다”고 토로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은 태어난 핏줄과 자라난 자리에서 찾을 수 있고, 뻐기지도 아첨하지도 않는다”고 미의 본적과 본심을 알려 줬다.

많은 이가 유물 수집을 투자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런 걸 살 돈이 없다” “뭘 사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속내다. 작가 이름이나 낙관에만 매달려 횡재했다는 생각을 하면 가짜나 엉터리를 만나기 쉽다. 허욕을 버리고 환하게 제 눈에 차는 작품을 오래오래 두고두고 즐겁게 찾는 사이, 안목이 길러진다. ‘유어예’가 별것이겠는가.

정재숙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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