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을에 훨훨 타는 사랑 꿈꾸는 당신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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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호 30면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분명 중년의 판타지가 있다. 그동안 먹고 사느라 너무 힘들었던 터이다. 무엇보다 중년이 되고 나면 돈과 섹스의 문제를 누군가 나서서 해결해 주기를 절실하게 바라는 욕망이 꿈틀댄다. 그건 두 가지의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하나는 내가 돈이 많고 젊은 여자를 닥치는 대로 취하는 쪽이 하나 있겠다. 또 하나는 누가 자신에게 돈을 주되 대신 그 대가로 여자에게 섹스를 해주는 쪽이다. 중년 남자들이 진실로 원하는 방향은 무엇일까. 후자다. 물론 정확한 여론조사 결과는 아니니 후자가 압도적일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대체로 후자일 것이다. 바로 늙고 매력적인 지골로(남창)가 되는 일이다.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은 존 터투로가 만든 신작 ‘지골로 인 뉴욕’이 바로 그런 얘기다.

새 영화 ‘지골로 인 뉴욕’

‘지골로 인 뉴욕’은 얼핏 보면 우디 앨런의 영화 같은 느낌을 준다. 우디 앨런이 주요 배역을 맡아 출연해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수다스럽고 정신이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기막힌 혜안과 통찰의 미학이 곁들여지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우디 앨런은 일종의 포주다. 원래 이름은 머레이인데 주인공 휘오라반테에게 중년여성들을 소개해 주는 일을 하면서 닉 네임으로 댄 봉고라고 개명할 만큼 위트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다. 그는 영화 속 내내 입을 다무는 적이 없다. 주인공 휘오라반테 역시 이름을 바꾼다. 그가 여자를 만날 때 쓰는 이름은 버질 하워드다. ‘버질’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이유는 단 하나. 휘오라반테보다 훨씬 더 ‘저질처럼 보이고 그래서 더 세 보이기’ 때문이다. 근데 뭐가 세다는 걸까?

두 사람이 ‘몸을 파는 일’에 나서게 된 계기는 간단하다. 이들은 나름 뉴욕 브루클린 사회의 지식인이었다. 낡은 책방이긴 하지만, 오래되고 지적인 책들을 모아 파는 일, 그러니까 고서점을 같이 운영해 왔다. 주인은 휘오라반테. 머레이는 오랜 친구이자 점원인 셈이었다.

그러나 브루클린 사회도 이제 올드한 서점이 버틸 수 있는 사회가 되지 못한다. 서점 문을 닫고 생계가 곤궁해진 터에 머레이의 피부과 주치의 여성(샤론 스톤)이 누군가 자신과 쓰리섬(threesome)을 해줄 남자를 찾는다고 말하고, 머레이는 주저없이 휘오라반테를 추천한다. 이 여의사는 남편과 헤어져 요즘은 매력적인 히스패닉 여성과 레즈비언 사랑에 빠져있는 참이다. 그래서 둘 사이에서 함께 잠자리를 할 남자를 찾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럴 때가 됐다는 것이다. 휘오라반테의 새로은 잡(job)은, 사실은 엄청나다면 엄청날 수 있는 이 일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지골로 인 뉴욕’은 그리 힘든 해석과 주석을 요하지 않는, 쉽고 경쾌하게 읽을 수 있는 텍스트다. 죄다 늙은 사람들(?)이 나오는 데도 그리 축축 늘어지거나 하지 않는다. 우디 앨런이 있기 때문이며 존 터투로의 진심어린 표정과 여전히 뇌쇄적인 샤론 스톤의 몸매, 이제는 확 늙어 버렸지만(조니 뎁이 그래서 버렸을까?) 그래서 더욱더 눈길이 가는 바네사 파라디가 있기 때문이다. '지골로 인 뉴욕'은 나이가 어리든, 아니면 나이를 아주아주 많이 먹었든, 그것과 상관없이 사람들이 끊임없이 섹스에 대한 환상, 지글지글 거리는 욕망에 휩싸여 사는 이유란, 모두가 다 진정으로 ‘외롭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하려 한다. 섹스는 도구일 뿐, 목적이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결코 그 도구를 하찮게 대해서는 안 된다는 삶의 경험을 얘기해 주려 한다.

영화 속에서 아비갈(바네사 파라디)은 자신의 벗은 등을 쓰다듬는 휘오라반테를 향해 눈물을 터뜨린다. 그녀는 말한다. “오랫동안 나를 만진 사람이 없었어요.” 그녀는 브루클린 유태인 구역에서 애를 여섯 낳은 후, 미망인이 된 여자다. 정통 유태인들은 여자들, 특히 미망인들이라면 다른 남자 앞에서 머리칼조차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이상한 사람들이지만 또 거기는 거기대로 삶의 룰이 있는 법이다.

‘지골로 인 뉴욕’은 이 가을에 볼만한 적격의 영화이다. 그건 자연의 계절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이 이제 가을쯤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라면 의미가 더 있을 작품이다. 무엇보다 구미가 확 댕길 작품이다. 아직도 여성과 혹은 남성과 활활 사랑을 불태울 수 있다는 환상을 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꼭 환상에 그칠 일인가. 이제 극장문 밖으로 나가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 볼 일이다.

글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anmail.net, 사진 올 댓 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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