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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경제 읽기] 대통령 취임사의 ‘경제부흥’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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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호 18면

2013년 2월 25일 늦은 겨울 아침. 쌀쌀한 날씨와 삼엄한 경비에도 불구하고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뜰은 기대와 기쁨에 감격한 국민으로 넘쳐났다. 그날 5000만 국민의 기대와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대통령 취임사였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700만 해외동포 여러분! 저는 오늘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희망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각오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로 시작해 “우리 국민 모두가 또 한 번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는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함께 힘을 합쳐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를 만들어 갑시다. 감사합니다”로 끝난 취임사는 그 감동만큼이나 5년 동안의 국정철학과 각오가 서린 헌법과도 같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민생·대통합·국민행복을 약속하고 출범한 정부인수위원회 첫 회의(2012년 1월 7일)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국민안전과 경제부흥을 국정의 두 중심축으로 설정한다고 했다. 며칠 뒤(1월 25일)에는 “경제민주화를 통해 성장 온기가 퍼져 무너진 중산층을 복원하는 것이 정부의 목표”라고 했다. “추격형 성장에서 선도형 성장”으로 전환하고 “수출 중심에서 수출내수 쌍끌이 구조”로 바꾸며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 동반 성장체제로 전환”하는 패러다임 변화를 강조했다.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게 대통령 취임사다.

취임사는 서언과 마무리말 외에 ‘경제부흥’과 ‘국민행복’과 ‘문화융성’의 3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 셋은 그대로 이 정부의 ‘4대 국정기조’로 포함되는데 마지막 국정기조는 ‘평화통일 기반구축’이다. ‘경제부흥’을 취임사 머리에 둔 것은 가장 우선시하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취임사에 담긴 대통령의 ‘경제부흥’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새 정부 제1기 경제팀이 내놓은 ‘공약가계부’와 ‘지역공약 이행계획’은 그런대로 신선한 반응을 주었다. 그러나 2013년 8월 8일 내놓은 세제개편안(2014~2017년 동안 누적 12조원 증세안)은 강력한 여론 저항에 밀려 즉각 수정되었다. 실질적으로 제1기 경제팀의 최초의 체계적인 경제정책 방향은 2014년도 예산안을 제출(2103년 9월 26일)하면서 제시되었다. ‘경제부흥’이 아닌 ‘경제활성화’를 목표로 내걸고 나온 중점 추진과제에는 경제활력 회복, 일자리 창출, 서민생활 안정과 삶의 질 제고, 국민안전과 든든한 정부, 건전재정 기반 및 재정운용 개선의 5가지가 목표였다. 그러나 꼭 석 달 뒤(2013년 12월27일) 나온 ‘2014년 경제정책 방향’에서는 ▶경제활력 회복이 내수활력 제고로 바뀌고 ▶일자리 창출과 서민생활 안정과 삶의 질 개선은 한데 묶어 일자리 창출과 민생안정으로 바뀌었으며 ▶경제체질 개선(공공부문 개혁 및 경제민주화 등 포함)이 덧붙여졌다.

바로 열흘 지난 2014년 1월 6일 발표한 연두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한반도 통일기반 구축과 5대 불안 해소와 함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마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여기에는 비정상의 정상화, 창조경제, 그리고 내수기반 확충이 3대 추진전략으로 들어가 있다. 3년 뒤(2017년)에는 잠재성장률은 4%로 끌어올리고,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넘어 4만 달러 시대를 바라보며, 고용률을 70%까지 올린다는 474 비전도 함께 밝혔다. 50여 일 뒤(2014년 2월 25일) 확정발표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기초가 튼튼한 경제로, 창조경제를 역동적인 혁신경제로, 그리고 내수기반 확충은 내수·수출 균형경제로 바뀌어져 있었다.

이처럼 현 정부의 경제정책의 포커스는 정책목표가 조금씩 바뀌어 왔다. 인수위원회와 취임사를 통해 설정된 ‘경제부흥’의 기치에도 불구하고 정부 초기에는 ‘경제활성화(또는 경제활력 회복)’를 강조하다가 2013년 말에는 ‘내수활력 제고’로 바뀌었고, 곧바로 ‘경제혁신’으로 대체되었다. 대통령 연두기자회견에서는 ‘내수기반 확충’이라고 했는데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는 ‘내수·수출 균형’이라고 했다. 정부 출범 전후 가장 중요한 정책목표였던 ‘일자리 창출’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는 하부 항목으로 묻혀버리고 말았다.

정부정책에는 ‘앵커(anchor)’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임기 내내 일관된 의사소통과 함께 일관된 목표, 일관된 정책을 펼 수 있다. 또 그래야만 정책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기본정책의 용어가 이렇게 자주 바뀌면 정책에 대한 신뢰는 물론 일관성에 큰 손상이 올 뿐더러 실질적인 정책효과도 기대하기 매우 어렵다. 현 정부에는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이라는 훌륭한 ‘앵커(국정기조)’가 있다. 모든 정책은 이런 국정기조 위에 수립돼야 한다. 이미 설정된 국정기조를 흩트리는 새로운 용어가 자꾸 ‘개발’될수록 정책들은 우왕좌왕하고 국민은 혼돈에 빠지지 않을까.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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