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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줄줄이 선고 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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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재판에 진 채무자에게 돈을 갚지 않은 기간에 높은 이자율(연 25%)을 적용했던 소송 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과 그 시행령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이 나온 다음날인 25일 대법원과 일선 법원에서는 큰 혼란이 일었다.

법원은 헌재 결정을 이유로 선고를 줄줄이 연기했고, 소송 당사자들은 재판 일정이 뒤로 미뤄진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해 했다.

◆선고 줄줄이 연기=대법원은 지난 24일 오후 전국 법원에'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고를 가급적 연기하라'는 취지의 지침을 급히 내렸다.

이에 따라 대법원 민사2부와 3부는 25일 선고 예정된 금전 지급 관련 청구사건 74건 중 절반이 넘는 41건에 대한 선고를 미뤘다. 서울지법의 한 민사합의 재판부도 10건 중 5건을 연기했다.

패소한 채무자에게 기존 소송 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25%의 지연이자를 물도록 판결문을 작성했었지만, 이를 그대로 선고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자율이 들쭉날쭉 적용되기도 했다. 소액(2천만원 이하) 사건을 담당하는 일부 재판부는 소송을 낸 원고와 합의해 25%의 이자율 대신 원래 약정했던 17%의 이자율을 적용했다. 소액 소송이 많은 카드회사 등 채권기관들이 재판을 빨리 끝내기 위해 택한 차선책이었다.

한 재판부는 지연 이자율로 5~6%인 민.상법상 법정이자율을 적용,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이 재판부 관계자는 "원고가 이의 제기를 할 수 있지만 일단 신속한 재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몇몇 채권자들은 "왜 내가 이자를 손해봐야 하느냐. 항소하겠다"고 재판부에 항의하기도 했다.

◆헌재.국회에 대한 불만 고조=대법원 관계자는 "헌재의 갑작스런 결정으로 혼란이 가중됐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관련 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어서 당장 효력이 생기지 않는'헌법 불합치'를 결정할 수도 있었는데 위헌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일부 법조계 인사들은 개정안 처리를 미룬 국회에 책임을 돌렸다. 법원은 지난해 10월 법무부에 개정을 요청했고, 법무부는 지난 2월 국회에 개정안을 냈다는 것이다.

한 법조계 인사는 "국민들이 법 공백 상태에 내몰리도록 국회가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계류 중인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 의결과 본회의 의결을 거쳐 공포되기까지 적어도 한달 가량은 걸리기 때문이다.

김승현.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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