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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사각지대, 중소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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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권선주
기업은행장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18년 14%, 2026년 20%에 이르고, 2050년엔 38.2%로 세계 최고의 고령국가가 될 것이라고 한다.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내집 마련이나 자녀 교육 등에 급급한 대다수 서민의 실질적인 노후 준비는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55% 이상이 노후를 전혀 준비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6%보다 4배 이상 높은 48.5%에 달하고 있다고 하니 다소 충격적이다. 또한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노후 준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50∼59세 인구의 30% 이상이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연금으로 받는 소득이 퇴직 전 소득을 어느 정도 대체하는지 나타내는 비율인 실질소득대체율은 55% 수준으로 국제기구 권고안인 60∼70%보다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상황이 빠른 시간 내에 개선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상황에서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은 개인에게나 국가에게나 문제가 될 것이다.

 2005년 우리나라에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된 이후 9년이 흘렀다. 올해 6월말 기준으로 퇴직연금 적립금은 87조5000억원으로 양적으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도입률은 여전히 저조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의 퇴직연금 도입률은 91%에 이르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16% 수준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88%가 중소기업 종사자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전 국민의 안정적인 노후 보장을 위해서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도입률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최근 정부는 기업 규모별로 단계적으로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2016년부터 시작해서 2022년엔 전면 의무화할 것이라고 한다. 또한 근속기간 1년 미만의 근로자도 일정기간 이상 근무할 경우 퇴직급여 가입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한다. 이번 정책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매우 필요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퇴직연금도입 의무화가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영세·중소기업 입장에서 퇴직연금제도 도입 의무화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래 중소기업을 방문하다 보면 많은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가 퇴직연금제도의 필요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비용 때문에 가입을 주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미 퇴직연금제도가 잘 정착된 국가에선 정부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에는 개인 부담액 중 최대 25%까지 국가가 지원을 하고 있으며, 독일은 사적연금에 대한 세제 지원 비율이 36.2%에 이른다. 우리 정부도 중소기업과 근로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앞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면밀한 검토와 논의를 거쳐 다른 나라들이 모범으로 삼을 만한 성공사례가 되길 기대한다.

 중소기업 CEO도 종업원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종업원들이 퇴직 이후에도 안정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금융사는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기 보다는 장기적인 시각에서 퇴직연금이 실질적으로 수요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고 퇴직연금시장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IBK기업은행도 중소기업 전문 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갈 것이다.

 아무쪼록 중소기업 퇴직연금제도 도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돼서 열심히 일한 사람들 모두가 안정적이고 편안한 노후를 맞이할 수 있는 사회가 하루 빨리 정착되길 기대한다.

권선주 기업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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