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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왜 일본과 똑같은 표준시 쓸까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이태형 교수

하루 중 해가 가장 높이 뜨는 시간은 언제일까요? 해시계를 만들어 실험하거나 막대기·볼펜을 땅에 세우고 낮 12시부터 1시까지 그림자의 길이를 재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림자가 가장 짧을 때가 바로 해가 가장 높이 뜨는 시간이죠. 한국천문연구원이나 천문대 홈페이지에서 시간을 확인해도 됩니다.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12시 30분쯤입니다. 그렇다면 왜 12시가 아니라 12시 30분경에 해가 가장 높이 뜨는 것일까요?

일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시간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간은 나라마다 모두 다르답니다. 우리나라에 해가 뜰 때 미국은 해가 지는데 시간을 같게 할 수는 없겠지요. 만약 전 세계가 똑같은 시간을 쓰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어느 나라에서는 아침 7시에 하루를 시작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밤 9시에 일과가 시작될 수도 있겠죠. 해의 위치와 시간이 맞지 않는 나라에서는 큰 혼란과 불만이 생길 것입니다.

각 나라마다 쓰고 있는 시간을 그 나라의 표준시라고 합니다. 이 표준시는 영국의 그리니치천문대를 기준으로 하는 세계시(UT)에 대비해 지방시, 혹은 지방 평균태양시라고 부릅니다. 표준시는 그 나라의 한 지점을 정해 그곳에서 해가 가장 남쪽에 왔을 때(남중)를 정오(낮 12시)로 정해 사용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우리나라의 중앙 자오선은 동경 127.5도지만 실제로는 일본 표준 자오선인 동경 135도에 맞춰 표준시를 쓰고 있다.

우리가 서 있는 지점에서 머리 위와 지구의 남북을 정확히 연결하는 커다란 원을 자오선이라고 합니다. 해가 자오선에 왔을 때가 정확히 남쪽에 오는 것이고 가장 높이 뜨는 것이지요. 영국 그리니치천문대에서는 경도 0도에 해당하는 커다란 원이 자오선이 되죠. 우리나라의 한가운데에 해당하는 중앙 자오선은 동경 127.5도로 세계시와는 8시간 30분 차이 납니다. 하지만 실제 표준시는 9시간 차이가 나지요. 이것은 우리가 일본의 중앙 자오선인 동경 135도를 표준자오선으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표준시의 기준이 되는 자오선을 표준자오선이라고 하는데 모든 나라의 표준자오선이 중앙 자오선과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 우리나라의 중앙 자오선인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하는 대신 일본의 시간을 함께 쓰고 있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국민들은 시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표준자오선을 동경 135도로 하나 127.5도로 하나 큰 문제는 없습니다. 처음에 시계를 30분 뒤로 돌리는 번거로움만 감수하면 그 다음에는 전처럼 시계를 보며 생활하면 되죠. 지난 100년 동안 표준자오선이 3번이나 바뀌었지만 이를 불편했던 기억으로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조선시대까지는 해시계로 측정한 시간을 사용했기 때문에 서울, 즉 한양의 경도에 해당하는 동경 127도 정도의 자오선을 표준시의 기준으로 써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동경 127.5인 중앙 자오선을 표준시로 사용한 것은 1908년 2월 7일 대한제국표준시자오선이 공포되면서부터입니다. 그러나 한일합방 이후 일본은 1912년 1월 1일을 기해 우리나라의 표준시를 일본의 표준자오선인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바꾸었습니다.

이 표준시는 해방 후에도 한일 양국에 주둔한 미군의 작전 편의 등으로 인해 한동안 유지되다가 대통령령에 의해 1954년 3월 21일 동경 127.5도를 표준자오선으로 하는 시간으로 환원되었습니다. 하지만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후 군인들이 주축이 된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그해 8월 10일을 기해 우리나라의 표준자오선을 다시 동경 135도로 변경했지요. 이것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 일본에 주둔한 미군이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데 한국과 일본의 시간이 다르면 전쟁 수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는 1시간 단위로 계산하는 15도 간격의 표준자오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유럽은 영국을 제외하고 모두 단일 시간을 쓰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시간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 관례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네 개의 시간을 쓰고 있지만 모두 1시간 단위의 시간차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도·이란·아프카니스탄·미얀마·호주 일부 등 특히 아시아권에서는 30분 단위의 표준시를 쓰는 나라도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후기에 동경 120도인 중국 시간을 표준시로 쓰기도 했죠.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일제시대부터 써왔던 일본 시간을 꼭 표준시로 써야 할까요?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보세요.

해의 길이가 가장 짧아지는 시간이 평균적으로 낮 12시가 아니라 12시 30분인 것은 우리가 일본의 표준시를 쓰기 때문입니다. 덕수궁에 있는 전통 해시계가 맞지 않는 것도 조상들이 잘못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본의 시간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시간에 대해 알아볼게요. 우리나라의 전통 시간은 간지(干支) 중 땅을 나타내는 말인 12지(支)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자(子·쥐), 축(丑·소), 인(寅·호랑이), 묘(卯·토끼), 진(辰·용), 사(巳·뱀), 오(午·말), 미(未·양), 신(申·원숭이), 유(酉·닭), 술(戌·개), 해(亥·돼지)의 열두 동물은 각각 2시간에 해당합니다. 첫 번째 시간인 자(子)시는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축(丑)시는 새벽 1~3시입니다. 낮 11시부터 13시까지는 오(午)시가 됩니다. 이에 따라 낮 12시는 정오(正午), 즉 오시의 중간이 되고, 밤 12시는 자정(子正), 즉 자시의 중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태형 충남대 천문우주과학과 겸임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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