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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지원서에서 사진은 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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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영훈 기자 중앙일보 모바일서비스본부장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경험의 범주를 벗어나 세상을 보긴 쉽지 않다. 나도 그렇다. 취업을 위해 성형을 한다는 얘길 듣곤 혀를 찼다. 미친 짓이라 여겼다. 내가 취직할 무렵 취업은 얼굴을 바꾸면서까지 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취업정보업체인 잡코리아 조사를 대하곤 아차 싶었다. 채용 담당자가 입사지원서 하나를 보는 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7.8분이란다. 평균이 그렇다는 얘기로 열 중 여섯은 5분 이하였다.

 이해는 한다. 대기업이 100명을 뽑으면 평균 3000명이 몰린다는데 한 명에 10분만 잡아도 500시간이다. 하지만 7.8분이 2라운드 진출자를 뽑기에 충분한 시간인가에 대한 의문은 크다. 내 경험도 있다. 몇 해 전 작문 시험 채점을 한 적이 있다. 일주일간 400명의 글을 봤다. 첫날은 정말 꼼꼼히 봤다. 시간이 흐를수록 집중력은 흐트러졌다. 제대로 하고 있나 하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나마 여러 명이 함께 보고 평균을 내는 채점 방식을 위안 삼았다. 경험적으로 나는 한번에 수천 명씩 지원을 받아 사람을 뽑는 공채 방식에선 실수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채점자 입장에선 오류 확률이 1~2%일 수 있다. 그러나 탈락한 당사자 입장에선 100%다.

 잡코리아 조사에서 더 놀란 건 사진이었다. 이력서를 볼 때 가장 먼저 보는 게 사진이란 응답은 34.3%나 됐다. 빼곡한 글자 사이에 시각적으로 도드라지는 사진에 눈길이 가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편견을 만들 수 있다.

 다시 내 경험이다. 작문 채점에서 최대 난관은 글씨였다. 글씨를 잘 쓴 건 읽기 수월했다. 피로가 쌓인 채점 후반부에는 악필 작문은 보기 싫었다. 불공평했다. 작문 평가의 척도는 구성과 내용, 글맛이지 글씨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 아찔한 건 이 조사에서 4.7%의 채용 담당자는 이력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사진을 꼽았다는 점이다. 2·3차 전형 과정을 감안하면 사진만으로 당락이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을 서류 심사의 최고 평가 기준으로 삼는 4.7%로 인해 취업 준비생은 오늘도 성형외과 주변을 서성댄다. 취업이 전쟁에 비유되는데, 1%의 채용담당자라도 ‘이게 중요해’라고 한다면 취업준비생은 1%를 채우기 위해 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미 취업한 세대가 성형하는 세대를 어떻게 탓할 수 있겠나.

 미국에선 대부분 회사에서 입사지원서에 사진을 붙이지 못하도록 한다. 인종과 외모 차별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불합리하다면 없애자. 이력서에서 사진 붙이는 난을 지우자. 인상이 중요한 직종이 있다면 면접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지원자에게 성형까지 할 건 없다고 백날 얘기해 봐야 소용없다. 결국은 기업의 결단이 필요하다. 결단은 권한을 쥔 자가 할 때 실질적 효과를 낸다. ‘내가 결단할 일이 아니다’고 하는 것은 권한 쥔 자가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