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강 - 온 갈등' 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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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라크전을 계기로 촉발된 미국 사회의 분열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전쟁 전의 '참전'과 '반전'갈등이 승전으로 봉합되기는 커녕 공화당 보수강경파가 같은 공화당의 보수온건파를 공격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언론계도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상대방을 노골적으로 경멸하거나 비난하고, 문화예술계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공화당끼리도 싸운다=공화당 보수강경파를 대변하는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은 22일 국무부를 맹공했다.

그는 보수 색채의 싱크 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에서 행한 연설에서 "지난 7개월간의 미국 대외정책을 보면 6개월간은 국무부가 망쳐놓고, 1개월은 국방부가 승리로 이끌었다"면서 도널드 럼즈펠드 장관 등 강경파가 포진한 국방부를 한껏 치켜세웠다.

그는 또 "국무부는 망가졌고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사실상 콜린 파월 장관의 해임을 촉구했다.

또 다른 보수파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인 콘스탄틴 멩기스 전 중앙정보국(CIA) 요원도 "국무부는 대통령과 상반된 목소리를 내고 전략적 예측을 도출하는 데 계속 실패하는 등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에 대해 국무부 쪽 관계자는 "깅그리치는 하원의장 당시 독선으로 공화당 조직을 흔들었고, 결국 선거에서 패배하게 만들어 불명예 퇴진을 한 사람"이라면서 "국무부도 그렇게 만들어 놓고 싶은 모양"이라고 비꼬았다.

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도 "국무부는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효과적이고 충성스럽고 부지런히 수행하고 있다"면서 비난을 일축했다. 또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은 파월 장관이 업무를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온건파에 대한 신뢰를 확인했다.

◆언론계 갈등도 심각=워싱턴 포스트는 22일 리처드 코언의 칼럼을 통해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운영하는 폭스 TV와 뉴욕 포스트는 보수 이데올로기를 사설이나 의견란뿐 아니라 일반 기사에서까지 강요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폭스TV와 뉴욕 포스트가 진보적 언론인이나 연예인들에 대해 왜곡보도한 사례들을 공개하면서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장려해야 할 사안이라는 게 우리가 배운 민주주의"라고 강조했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도 이날 '비둘기들을 위한 변명'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이라크전과 관련한 온건파들의 예측이 상당 부분 빗나갔지만 강경파도 틀린 게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한 이라크가 이를 사용하지 못하게 미국이 막았다면 존경을 표하겠지만 애초에 이런 무기가 없었다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미국 어린이들이나 전쟁 중에 숨진 이라크 어린이들에게 설명할 게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월 스트리트 저널은 사설을 통해 "뉴욕 타임스 편집진이 이라크전에 대한 잘못된 비관론을 퍼뜨렸다"고 비난하는 등 언론계 내부의 강온 대립이 심각한 상황이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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