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전 총리 특사방문, 한일관계 풀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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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일본 총리가 19일 한국을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의 친서를 전달한다.

복수의 한·일 외교 관계자는 17일 "2020년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 자격으로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참석하는 모리 전 총리가 청와대를 찾아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아베 총리의 메시지를 직접 전할 방침"이라며 "경색된 한·일 관계를 풀기 위한 최근의 잇딴 움직임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모리 전 총리는 16일 오전 유흥수 주일 한국대사와 만나 의견을 교환했다.

외교 소식통은 "모리 전 총리의 박 대통령 예방은 양국 관계 개선을 모색해 가는 일련의 과정 중 하나"라며 "하지만 아베 총리의 메시지에 위안부 문제 타결안 등 구체적인 내용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꽉 막힌 한·일 관계의 현안을 해결한다기 보다 양국 간 외상 회담→정상회담으로 나아가는 동력을 얻고 일종의 '예'를 갖추려는 게 일본 측의 의도라는 분석이다. 전직 일본 총리의 박 대통령 예방은 지난해 2월 취임 축하 특사로 파견된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이후 처음이다.

일본 측은 이달 말 미국 뉴욕에서의 유엔총회 자리에서 윤병세-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 회담을 한 뒤 10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의 다자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연다는 구상이다. 내치에서 비교적 높은 점수를 얻고 있는 아베 정권으로선 현 시점이 "한국·중국과의 근린 외교는 낙제점"이란 국내외 비판을 만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고 있다.

아베 정권이 특히 주목하는 건 현재 한국 내에서 "윤 장관 등 대일 강경파가 한·일 관계 개선에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론이 거세지고 있는 점이다. 일 정부가 APEC에서의 중·일 정상회담 개최가 거의 확정된 듯 언론에 흘리고 있는 것도 한국이 조바심을 갖게끔 유도해 한·일 정상회담에 응하도록 하려는 계산이다.

청와대의 접근방식도 최근 다소 유연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 지도자들이 전향적 자세를 보여주는 게 우선이지만 그것이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도 이날 박 대통령의 유엔(UN) 총회(23일부터) 참석 관련 브리핑에서 ‘아베 총리도 참석하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마주칠 기회가 많을 것”이라며 “그 많은 기회 중 어디가 될 지 좀 준비가 잘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일 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하지만 한국 외교당국은 여전히 난감함을 떨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박 대통령 취임 후 "일본 측의 진정한 사과와 진전된 조치가 없으면 만나는 의미가 없다"는 원칙을 고수해왔는데 일본 측의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덜컥 손을 잡는 모양새가 좋지 않은 까닭이다.

박 대통령이 16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명예를 온전히 회복할 수 있도록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리길 바란다. 그렇게 해야 경색된 양국 관계를 푸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아베 정권이 위안부 문제에서 타협안을 내놓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게다가 최근 아사히(朝日) 신문이 위안부 관련 보도의 취소 사건 이후 우익세력의 기세는 어느 때보다 등등하다.

고위 외교 당국자는 "당분간 한·일 외교 차관 전략대화(다음달 1일 도쿄 개최), 경우에 따라선 외상 회담에 나서는 등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대내외에 보일 것"이라며 "이와 동시에 어느 정도의 '명분'이 생기는지 여론추이를 보면서 한·일 정상회담 여부를 결정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신용호 기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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