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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노파 예금통장 훔친 조사관 취재기자 방담\서울시경은 "곡성만 없는 초상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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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설마설마 했던게 현실로 나타났군요. 지금까지 경찰관비위는 범죄자들과의 유착으로 밀수금괴를 착복하거나 소매치기와 같은 조직범죄단으로부터의 정기상납 등이 대표적인 것이었지요.
그러나 이번 윤노파 피살사건처럼 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사건해결의 키가 될 수도 있는 강물을 훔쳤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 치욕적인 사건이라고 하겠읍니다.
­특히 사건수사에 간여했던 수사본부요원이 잿밥에 눈이 어두워 피해자의 재산을 슬쩍했다는 것은 우리경찰의 근본적인 정신자세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해도 과장된 것은 결코 아닌 것이 되고 말았읍니다.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멀었고 고양이 앞에 생선을 놓아둔 셈이 되었읍니다.
­그간의 몇 번 강력사건수사과정에서 소위 물증 없는 경황증거만으로 특히 자백의 경우 가혹행위에 의한 자백을 언론이 꼬집었을 때 한 경찰간부는 『피의자의 명예는 있고 8만 경찰의 명예는 없단 말이냐』고 항변을 했읍니다만 일이 이처럼 결말이 나고 보니 정말 8만 경찰의 명예가 한순간에 떨어지는 듯한 감이 없지 않군요.
­일이 결국 이렇게 판명이 났지만 그 가능성에 대해서 모두들『술 먹은 자리에서나 할수 있는 얘기지 피살자의 예금증서를 수사경찰관이 빼 돌렸다는 것을 활자화할 만큼 우리경찰이 타락했다고는 할수 없지 않느냐』고들 입을 모았지요.
­사실 경찰출입을 오래한 입장에서는 밉든 곱든 간에 기우는 애정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만 오늘 이런 결과를 보고 나니 울고 싶은 심정입니다.
때릴 땐 때리더라도 경찰의 발전과 신뢰감 고취를 마음속으로 기도하는 입장이었으니까요.
­경찰도 머리를 숙였지만 경찰출입 기자들도 깊은 상처와 더불어 서로가 안타까와 슬픈표정들 이었읍니다.
­제일은행 퇴계로지점에 윤노파의 예금증서가 나타났다는 사실이 터져 나온게 16일 조간부터였죠?
­그렇죠. 서울용산경찰서 수사팀이 결사적으로 보안을 유지했었읍니다만 은행쪽 누군가가 신문사에 제보를 했다는 이야깁니다.
­경찰은 그때까지 상부에 보고조차 안했었다면서요?
­이상점 용산경찰서장과 김종윤수사과장, 그리고 김과장이 차출한 극비수사요원 4명, 이렇게 6명만이 알고 있었습니다. 서울시경의 윤주선형사과장은 물론 조용우 제2부 국장 또 박재직 시경국장도 조간신문을 보고 경악했다는 겁니다. 그처럼 중요한 사실이 어떻게 보고되지 않았는가 하는 거였죠.
­박재식국장이 오히려 용산서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확인을 했고… 이때가 16일 아침7시쯤이었어요.
­치안본부와 검찰에서도「난리」가 났었어요.
­바로 전날인 15일하오 서울시경에서 23개 경찰서의 수사과장회의가 소집됐었는데 그 회의에 김종천과장이 참석했었는데도 보고를 하지 않았어요. 시경 윤주선형사과장은 16일 아침 용산경찰서에 전화를 걸면서 책상을 치더군요.
­처음 이 사건이 보도되면서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은 용산경찰서가 왜「증서출현」이라는 귀중한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읍니다.
­경찰조사에서 김종윤과장은 『고숙종여인의 재판에 영향이 있을 것 같아서』보고를 하지 않았노라고 진술했어요. 과연 김과장이하 순경관련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는 조사결과 밝혀질 것으로 보입니다.
­아뭏든 뒤늦게 서울시경이 주도하는 출처수사가 시각됐습니다만 경찰은 경찰관이 관련됐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 오히려 윤노파 살해사건의 진범이 따로 나타나는거 아니냐하는 쪽에 속으로 초조했었읍니다.
­일부러 『예금증서 출처가 나으면 고여인이 진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질테니 두고 보라』는 식이었지요.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절취범인 하영웅순경이 증서발견 사실을 독점수사 했던 4인의 형사중의 한사람이었으니 만일 은행측에서 언론기관에 이를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이번 사건은 영원히 은폐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생기는군요.
­「제3의 사나이」로 지명수배를 받았던 조인재씨가 뒤늦게 경찰에 나타났지만 조씨가 그동안 취한「사전조치」는 경찰관계자들이 교훈적으로 받아 들여야할 케이스였지요.
조씨는 16일 아침 문제의 예금증서가 윤보살의 것이며 자신이 전달자로 지목됐다는 신문·방송보도를 보고 바로 경찰에 출두하지 않고 자신에게 증서를 넘겨준 서호일씨를 찾아 나섰고 또 17일 경찰에 출두하면서 동생을 시켜 『내가 경찰에 가거든 너는 검찰에 가서 내가 이 증서를 서씨로부터 받았고 서씨는 용산서하순경으로부터 받았다는 말을 해달라』고 부탁했다는 거예요.
이는 조씨가 경찰조사 과정에서 사건이 왜곡될 가능성에 대비한 것으로 경찰수사 자세에 대한 신뢰도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지요.
­경찰이 경찰관의 관련 사실을 안 것은 언제입니까?
­17일 상오 서씨가 경찰에 몰두하면서 이내 알았던것 같아요. 서씨는『바로 하순경』이 예금증서의 출처라고 밝혔고 검찰은 곧 이를 서울시경 형사과장에게 알렸으니까요.
­그때부터 시경의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 갔습니다. 제2부 국장과 형사과장의 국장실 출입이 잦아지더군요.
­상오 11시쯤 서울지검 김기현부장검사가 시경 윤주선형사과장에게 전화를 걸면서 팽팽한 긴장으로 이어지는 숨막히는 시간이 시각 됐지요.
『책임 있는 사람이 내게 좀 와달라』『용산경찰서 하영웅순경을 긴급수배, 신병을 확보하라』『사태가 심각하다』는 김부장검사의 전화는 단 세마디 뿐이었읍니다.
­윤과장이 김부장검사 방에 들어섰을 때 25세 가량의 청년이 앉아 있었고 그가 바로 경찰이 지금 막 찾고 있는 서현일씨라는 걸 알자 윤과장은 순간적으로 사건전말을 느꼈다는 겁니다.
­『하영웅형사를 잡아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윤과장이 시경 지능계에 지시한게 상오 11시30분쯤이었어요.
지능계장 최황규경정은 하순경과 친분관계가 없는 사람을 찾던 끝에 하순경의 얼굴도 모르는 계경위를 점찍어 하순경 검거령을 내린 것이지요.
이경위는 먼저 형사 2명과 함께 차를 몰아 당산동 하형사 큰 누이집을 덮쳤지요.
­검거 당시 상황을 좀 얘기해보지요.
­김모형사가 동사무소직원을 가장하고 대문을 밀치고 들어섰을 때 큰누이(51)는 집에 없었고 문이 열린 방안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읍니다.
청바지에 세무잠바차림의 40대였어요.
『주인되십니까.』
『(태연히)주인 친구됩니다.』
『주인 친구분이신데 어떻게 주인도 없는 안방에 계시는가요. 어디 계십니까.』
『아, 예 전기안전공사에 나가고 있읍니다. 김× ×입니다.』
『그러십니까. 증명 좀 볼수 없을까요?』
『없는데요….마침 집이 이 근처니까 가지고 올까요』이렇게 이경위와 하형사는 대화를 나눴읍니다.
이경위는 순간『이게 바로 하순경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예, 같이 가봅시다. 대단히 미안합니다만 팔을 좀 끼고 가셔야겠읍니다.』
이렇게해서 문앞에 세워둔 차에 사나이를 태웠을 때 하순경의 큰누이가 막 외출했다 돌아오고 있었읍니다.
『아주머니.이 집에 사시죠?』
『예.』
『이 사람이 아주머니 동생분이시죠?』
『예.』
이때가 낮 12시30분쯤이었지요. 차 속에서 담배한대를 맛있게 태운 하순경은 『30분만 늦게 왔어도 나를 6개월 동안은 잡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더래요.
수십만원을 준비해 막 시골로 떠나려던 참이었고 한 6개월쯤 잠적하면 잠잠해지리라고 믿었다는 겁니다.
­상오 11시쯤 김현제강력계장이 조씨를 조사하던 시내 모처로부터 허겁지겁 뛰어들어와 윤주선형사과장과 밀담을 한뒤 짜증을 내며 함께 나갔고 이때부터 시경의 분위기는 급전직하, 곡소리만 빠진 초상집이었죠.
­슬픈 시간 이었읍니다. 『범인은 용산경찰서 하영웅순경』이라는 짤막한 발표를 하는 박재식국장의 얼굴이 빨갛게 상기돼 있었고 손에서는 가벼운 경련이 일고 있었읍니다.
­검찰청의 움직임은 어땠어요.」통장 발견의 보고를 받자 한 검찰간부는 『윤노파 살해후 현장에 접근할 수 있는 측근 또는 다른 인물에 의해 빼돌려진 통장』이라고 단언해 고여인의 공소유지문제가「발등의 불」이니 그러는 것이 아닌가 했는데 결과적으로 맞아떨어졌어요.
­이 바람에 교육을 받으러갔던 서울지검 김기현강력부장검사는 17일 아침 급히 출근했고 담당인 정상명검사는 대검등 검찰상부로부터「진상보고」의 독촉과 질책을 받았지만 설여인 범행과 관련 없다는 판단이 서자 16일 아침 일찍 사죄차 찾아온 용산서 형사계장에게 『인간적으로 섭섭하다」고 가볍게 꾸짖고 말더군요.
­사건진상이 밝혀진 17일은 마침 체육의 날이라서 서울지검이 각부·과별로 야유회를 계획해서 강력부인 형사3부 검사들은 수원 용주사로 막 떠나려는데 하형사로부터 예금증서를 받았다는 서씨가 들이닥치는 바람에 야유회를 놓쳤지요.
­낮 1시15분쯤 서씨에 대한 검찰의 조사결과를 통보 받은 시경강력계 형사6명이 서씨의 신범을 인도해 갈때는 마치 서부활극을 보는 듯 했어요. 형사 2명이 서씨의 양팔을 끼고 단거리 선수처럼 달아났고 다른 형사들은 기자들의 접근을 막아 육탄전을 벌일 정도였어요.
­3층에서 1층까지 뛰는데 엄청나게 빠르더군요. 서씨는 체구마저 작아 형사2명에 번쩍 들려가는듯이 보였으니까요.
­직접 살인범행과는 관계가 없더라도 피살자의 예금증서를 빼돌렸으니 고여인이 1회 공판때『신고직후 경찰관이 현장감식을 하며 우황청심환 등은 나눠 갖고 나에게는 패물을 보관시켰다』는 진술이 뒷받침됐고 앞으로의 재판에서 고여인의 진술에 상당한 진실성이 부여될 것 같습니다.
­당시 그 진술이 나오자 방청석은 『와』하는 웃음이 터졌고 관여 검사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는데‥
­이번 사건이 진행중인 고여인의 공판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가 문제지요.
­검찰은 신문이 마치 다른 살해범인이 있는 것처럼 보도해 여론에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재판부의 심증이 흔들릴까 염려하더군요.
­그러나 재판부는 비교적 담담한 표정이었어요. 재판장인 김헌무부장판사는 일체 코멘트를 않았지만 동료법관에게 『담담한 심경으로 기록·증거와 자유심층으로 결심 때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하더래요.
­하순경의 예금증서 절취사건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야말로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할 것이 아니냐』라고 책임론을 들고 있읍니다.
­일본의 경우 몇년전 순경한사람이 강간사건을 저지르자 경찰의 최고 책임가인 경시총감이사직한 예도 있지요.
­최근 박상은양 사건은 경찰이 범인으로 지목한 J군이 범인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채 세인의 의식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고 충북 제성에서의 처녀 강간피살사건은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하여 구속했다가 진범이 잡혀 풀어주었고, 전남 광주에서도 지난봄 이와 유사한 사건이 터지는등 경찰의 신뢰도에 먹칠을 하는 사건이 잇달아 터지고 있으나 누가 책임을 졌다는 얘기는 하나도 없었읍니다.
­이런 사건의 배경에는 우리의 경찰이 안고 있는 구조적 맹점이 있지 않을까요.
­강력 사건이 날 때마다 수사관들과 함께 철야근무를 하면서 지켜보면 수사형사들에 대한 경찰자체의 인식과 처우가 형편없지요.
인기 TV수사극인「형사 콜롬보」나「스타스키와 허치」에서처럼 차량·수사비 지원이나 수사장비 과학화는 꿈 같은 얘기고 이의 기회가 다른 경찰에 비해 적어 요즘 젊은 경찰관들은 수사파트를 피하고 있는 세태만 보더라도 수사형사의 현주소를 알수 있지요.
제발 우리 경찰발전의 뼈저린 교훈이 되기를 빌고 더 이상의「추악한 민중지팡이」의 출현이 없어야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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