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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괜찮아, 가을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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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영희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추석 연휴 동안 극심한 귀성전쟁을 치른 것도 아닌데, 명절 이후 평소와는 다른 우울감에 시달리고 있다. 몸과 맘이 무기력하고, 드라마 속 조인성님의 자태에도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으며,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쏟아지는 이상 증세다. 혹시 우울증? 싶어 포털사이트에 나온 자가진단을 해 봤다.

‘무슨 일을 하는데 있어 흥미나 재미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기분이 처지거나, 우울하거나, 희망이 없다고 느낀다’(○), ‘식욕이 거의 없거나, 아니면 너무 많이 먹는다.’(X·식욕은 왕성) 등등의 테스트 문항이 이어진다. 이런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될 땐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한단다.

 대한민국 성인 여덟 명 중 한 명은 이런 우울증상을 경험했다는 뉴스. 질병관리본부가 2012년 실시한 조사인데 “최근 1년 사이 연속적으로 2주 이상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슬픔이나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라는 물음에 12.5%가 그렇다고 답했다. 여성 경험률이 15.9%로 남성(8.9%)의 2배 가까이 되고, 연령별로는 70세 이상(17.9%)이 가장 많이 우울해한다. 그런데 이들 중 정신상담이나 치료를 받은 비율은 9.7%, 열 명 중 한 명이 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상은 우울증과는 다르다. 질병관리본부도 “우울증상 경험에 대한 조사일 뿐, 우울증 진단을 내리려면 더 정밀한 검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울감이 점차 심해지면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 자살 충동 등의 심각한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갑자기 찾아온 ‘마음의 감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말고 세심히 보살펴야 하는 이유다.

우울증은 특별히 마음이 약한 사람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질환이다. 정신의학을 소재로 한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신경정신과 의사 조동민(성동일)은 말한다. “사람들은 정신증 환자들을 이상하게 봐. 무슨 벌레 보듯이. 큰 스트레스 연타 세 방이면 너나 할 것 없이 걸릴 수 있는 게 정신증인데, 자기는 죽어도 안 걸릴 것처럼.”

 개인적으로 가벼운 우울감에는 ‘호르몬 탓하기’로 맞서고 있다. 이번에도 주효했다. 가을이면 일조량이 적어지는 탓에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의 분비가 줄어들고 이로 인한 계절성 우울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한다. 내 탓이 아니야. 그냥 계절 탓이야.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친구와 함께 가을볕 쏟아지는 한강변을 걸었다. 마음이 한결 따뜻해졌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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