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용품 「불양」시정 가장 보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전통적인 유교사상이 규범으로 뿌리박혀 있는 우리사회에서 소비자운동만큼여성이 주도권을 쥐고 이끌어가는 분야도 따로 없을 것이다.
69년 서울YWCA에 소비자보호위원회가 생기면서부터 적극적 활동단계로 접어들기 시작한 소비자보호운동은 70년대중반 호경기로 인해 국민소득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빠른 속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69년 서울YWCA의 사회문제부간사로 있으면서 소비자보호위원회에 관계한 이래 한국소비자연맹 창립멤버등으로 활약, 소비자운동에 전념해온 김재옥씨(한국소비자연맹사무처장)는 보다나은 내일에 승부를 걸고살아가는 이 분야 전문인중의 한사람이다.
『대학 (이대·사회학)을 졸업하고 여성운동을 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어 Y에 들어 갔어요. 60년대 산업사회로 변화되면서 여성운동의 주관점도 소비자운동으로 바뀌었지요.
여성이 소비활동을 전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데 반해 권익옹호에 있어서는 황무지나 다름이 없어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읍니다.』
그는 전문소비자단체인 소비자연맹과 서울Y의 일을 함께 해오다가 78년 연맹으로 완전히 자리를 옮겼다.
소비자의식화를 위한 각종 세미나, 소비자교육프로그램, 품평회, 불량및 우수상품전시회등이 그가 맡아온 일들.
소비자의 주인의식을 깨우쳐주던 초기에 비해 시장감시요원·상품테스트요원등 전문가 양성까지 해낼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잘못되어진 것을 발견하고 그것이 시정될때 활동하는 보람을 느껴요. 조그마한 힘이지만 사회에 이바지할수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흐뭇하기도 하고요.』
수많은 상품테스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79년에 실시한 어린이용 문방구류 테스트.
국교교사·어린이들이 직접 테스트에 참가하여 사용비교를 해본 결과 거의 대부분이 조잡하여 불신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를 테스트한 물품과 함께 청와대로 보내연빈관에 전시하며 당시 박정희대통령에게 시정을 건의, 『어린이의 물품불신은 나아가 국가불신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판단아래 모든 문방구에 「품」자표시를 하도록 지시한 일은 두고 두고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일이다.
그러나 고충도 많다. 업체에 불리한 시험결과가 지상에 발표되면 공갈·협박에 억지를 부리는가 하면 정부가 시정명령을 내린 일임에도 불구하고 민사소송을 제기, 정신적인 압박을가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래서 그는 소비자운동을 『외로운 운동』이라 부른다. 칭찬해주는 사람도, 자신들을 보호해줄 무엇도 지니지 못한채 묵묵히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마르모트가 되기도해요. 78년 합성세제 테스트때를 비롯, 피부반응 테스트를 할때면 직접 우리 몸의 일부에 발라봅니다. 가렵고 물집이 생겨 밤잠을 설치는 때도 많았지요.』 그는 우리도 구미 선진국처럼 한시바삐 상품테스트가 컴퓨터화됐으면좋겠다며 웃는다. 『소비자운동은 어느 누구의 운동도 아닙니다. 국민전체가 소비자임을 인식하고 권리를 찾는데 참여해야합니다.』시간이 걸리더라도 「상향식운동」이 돼야 참뜻을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그는 생명의 위해로부터 보호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소비자문제라는 견해를 보인다.
최근 대학원(이대·사회학)에 진학, 소비자운동의 이론적 보완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는 그는 협뇌경씨 (소비자연맹부회장)와 함께 『소비자를 위한 송동사회』라는 책을 펴내기도했다.
1남1여를 둔 주부로 1인 4역을 무리없이 해내고있는 금씨는 그래서인지 「무서운 맹렬여성」이기보다는「사리밝은 아줌마」라는 인상이 짙게 남는다. <홍은희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