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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8군 장교클럽 패션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1957년 첫번째 패션쇼를 가진데 이어 해마다 한번 이상 정기적인 쇼를 가져온 필자에게 있어 1959년 5월12일 OEC(미8군장교클럽)여성클럽 초청 패션쇼는 디자이너로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새로운 안목을 가지게된 좋은 기회였다.
애당초 OEC여성클럽으로부터 패션쇼를 해달라는 초청을 받았을 때는 여러 가지 특수여건 때문에 생각이 복잡했다.
양장의 본고장 사람들인 미국여성들 앞에서 작품을 선보인다는 사실도 조심스러웠지만 그보다는 정작 의상을 입어 낼 모델들이 이제까지의 패션쇼에서처럼 필자와 친숙한 우리네 연예인들이 아니라 OEC여성클럽 회원들 자신이란 점이었다.
의상을 디자인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입을 사람의 조건, 즉 몸매나 얼굴형이 우리 한국인과는 전혀 다른 서구여성이란 사실이 필자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 비록 서양 옷이란 옷의 양장이지만 되도록이면 우리 한국여성들에게 잘 어울리고 입기 편한 디자인에 역점을 두어온 필자로서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작업해야만 하겠다는 지레짐작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필자에게 찾아온 모델 예정자들을 만나자 이런 걱정은 깨끗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나이도, 신분도 각양각색인 모델후보들은 필자의 양장점에 찾아오는 여느 손님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그저 평범한 생활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미8군 영내 서비스클럽에서 일한다는 날씬한 처녀 「미스·헤즐」에서부터 다섯 아이의 어머니라는데 동양여성처럼 자그마하고 조용한 인상의 「미시즈·호이저」, 몹시 뚱뚱하지만 가슴이 풍만해서 로네크가 잘 어울리던 「미시즈·후리크」, 지나치게 빼빼해서 마른 체격을 카무플라지하느라 고심했던 「미시즈·던」, 그리고 희끗희끗한 은발이 품위있던 「아이버슨」여성클럽 회장에 이르기까지 50여 회원중에서 선발된 모델후보들은 그야말로 몸매도, 얼굴형도 다채로웠다.
요즈음도 나이 든 분 중에서는 가끔 들을 수 있는 말이지만 그 당시 우리 나라 여성들이 흔히 「나는 너무 몸이 뚱뚱해서-」, 혹은 「나는 너무 키가 작아서-」라는 단서로 양장하기를 꺼리던 풍토에서 이런 경험은 새로운 개안과도 같은 것이었다.
양장은 반드시 체격이 곱고 좋은 여성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스레 느낌과 동시에 패션쇼의 모델이 라고 해서 반드시 아름다운체격을 가진 여성들만 실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린 것이다.
이런 느낌은 비단 필자 혼자만이 아니라 그날의 패션쇼를 관람했던 이들도 공통적으로 느꼈던 듯 당시 이 패션쇼를 취급했던 신문기사들도 그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59년 5윌18일자 세계일보 가정란에 실린 OEC여성클럽 초청 최경자 패션쇼 기사는 「뚱뚱한 몸이나, 야윈 체격이나 몸에 잘 맞는 양장은 매력적」이란 부제아래 다음과 같은 평을 싣고 있다.
『이번 OEC여성클럽에서 열린 최경자 패션쇼는 세련된 미와 함께 특히 현실적인 감을 뚜렷이 보여주는 쇼였다는데서 호감을 느끼게 했다.
흔히 우리 나라 여성들은 양장하면 젊고 체격이 좋은 이들이나 하는 것으로 알아 왔는데 이 같은 관념은 이번 쇼가 완전히 일소할 수 있게 하였다고 볼 수 있겠다.
이번 쇼에는 모두 28점의 여름의상이 출품되었는데 웨스트를 강조하기 위해서 벨트를 많이 사용한 것이 눈에 띄며 모델의 체격, 특징을 잘 살리거나 혹은 카무플라지하기 위해 신경을 쓴 점이 인상적이다.
뚱뚱한 사람의 경우에는 대개 디자인이 복잡한 것을 피하고 간단한 것이 찰 어울려서 좋았다.
일반적으로 아무리 체격이 독특해도 몸에 잘 맞게 만들기만 하면 보기 좋고 매력적인 것이 역시 양장이라는 것을 이번 쇼는 또 한번 느끼게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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