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 시 짓기 운동』열기에 점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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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앙일보 「시조강좌」를 끝마치고…
8월 22일, 그러니까 늦더위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무렵 시작한 시조강좌가 지난 9월26일 강의를 마지막으로 장장 6주간의 막을 내렸다.
선자가 알기로는 어느 학교의 교단에서가 아닌, 사회단체나 매스컴에서의 본격적인 시조창작 강좌는 이번 이 「중앙강좌」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하기 때문에 시종 강단에 섰던 선자는 그때마다 스타트라인에 선 주자처럼 무거운 짐이 어깨를 누르는 듯한 책무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넓은 광맥을 만난 광부처럼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채광(?)하기에 힘든 줄을 몰랐던 것은 광부는 광부대로 좀 신명에 접해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의 모든 모임에서는 20∼30대의 아주 좁은 폭의 연령층만이 청강을 오거나 응모를 해오는 것이 하나의 통례요 통념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번에는 20대에서 70대까지의 모든 연령층이 청강을 신청해 왔다는 사실이다.
직업별로 분류해보더라도 학생이 있었는가 하면 주부가 있고, 교육자가 있었는가 하면 젊은 사업가도 있었다. 군인이 나와 주었고, 농부가 청강해 주었으며, 정치인도, 법조인도 동참해 주었다. 어찌 고무적인 사실이 아니겠는가.
나랏일의 기틀(국기)이 잡힌다는 것은 꼭 무슨 어기찬 구호나 플래카드를 내걸고 수많은 군중이 모이는 자리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실로 조그마한 자리, 양광이 묵은 풀밭에 깁실같은 햇살을 내려주어 새싹이 움트는 곳, 그 진리의 자리, 그 「점」의 자리에서부터 싹트는 것이다.
이제 겨레 시 짓기 운동의 봉화가 높이 올려졌다.
이 중앙일보의「시조강좌」가 하나의 기연이 되어 마니산 첨성대에서 채화된 성화처럼 건국의 노래(겨레시)제전에 점화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하다.
이번 수강생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많은 작품이 모였으나 이번에는 주부들만의 특집으로 꾸며 보았다.
『가을 밤』(전성신)의 「나라고 저무는 황혼을 동여맬 수 있으랴」는 고향마을 동구밖에 버티고 섰는 늙은 상수리나무의 정정함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각자의 연륜과 더불어 종장의 노장함을 본다. 『박』 (이택제) 의 「딸애가 보듬고 온 조롱박 손에 들면」과 그 파릇한 결에 볼을 비비면, 밀물처럼 밀려오는 지난날의 고향생각 같은 표현으로 조롱박 하나에서 도출 해낸 시상이 연련하다. 『마흔』 (문안례)의 「갓 마흔 설운 나이 덧없이 쌓였는가」에서는 「갓 마흔」 이 아니라, 「어느덧 마흔나이」였으면 더 좋을 뻔했다. 사루비아 붉은 꽃잎에서 느끼는 열 다섯 소녀 적의 맘/듣는 잎 구르는 소리에 선잠 자주 깨누나/다림질이 잘된 작품이다.
『빨간 장미』(이동륜)의 「터질 듯 그리움이 이제는 미움되어」는 「그리움이 숯이 되어 타다 남은 재일는가」 쯤으로 변용되었더라면 더 나을 뻔했다.
『햇미역』(최영자)의 햇미역에서 바다 냄새가 흘러오듯이 작품에서는 풋풋한 인정의 훈기가 풍겨 온다. 「시모님 가신 후로는 그 국밥이 못 잊혀」 그렇다 세월도 인정도 가고나서야 되살아나는 법이다.
『울릉도 바닷길』 (홍정수)의 「쪽보다 짙은 바다배를 업고 노한 파도」란 표현이 접었다 펴는 묘(굴절의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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