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정국 … 청와대에 서운한 김무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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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얼굴이 실룩거렸다. 1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씨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방안 포럼’에 참석해서다. 박승한 대한씨름협회장의 ‘진 반 농 반’ 인사말 때문이었다. 박 회장은 “요즘 국회에서 입씨름을 많이 하던데 차라리 그냥 씨름을 하시라. 그러면 심판을 봐 드리겠다”고 말했다. 좌중에 웃음이 터졌지만 김 대표는 웃지 않았다. 그러곤 준비된 축사 대신 “국회의원들이 씨름인 여러분한테 조롱거리가 되는 게 참 기가 막힌다”며 “아무리 그렇지만 면전에서 우리를 조롱하는 건 다시 생각해달라”고 정색했다. 평소라면 그냥 웃어 넘겼을 만한 상황이었는데도 참지 않았다.

 측근들에 따르면 김 대표는 요즘 풀리지 않는 정국에 심기가 매우 불편한 상태라고 한다. 이날 오전 옛 상도동계 모임인 민주동지회가 마련해준 당 대표 취임 축하 자리에서도 “정치는 맺힌 것을 푸는 건데 집권여당의 대표가 속 시원히 풀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이런 심리의 뿌리에는 청와대에 대한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김 대표는 추석 연휴 기간인 지난 7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직접 비판했다. 그는 세월호 사고 당일(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루머와 관련해 “그런 유언비어가 퍼진 건 국회에서 답변을 잘못한 김 실장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서실장이 국회에 열 번이라도 나와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청와대가 세월호 국면에서 너무 경직된 태도를 보였다는 게 김 대표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김 대표는 지난달 말 당 연찬회에서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한 뒤 “찬물 맞고 유연해지라”며 김 실장을 다음 차례로 지목했다. 특히 김 대표 주변에선 청와대와 정부에 서운함을 토로하는 인사들이 많다. 김 대표는 전당대회 이튿날인 7월 15일 청와대에서 당 지도부와 함께 박 대통령을 만난 뒤 10여 분간 독대했다. 하지만 그 뒤 두 달이 돼가고 정국이 꼬일 대로 꼬였는데도 당·청 회동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당 대표 경선 당시 김 대표는 “대통령과의 회동을 정례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김 대표는 “평소 지론을 말한 것”이라고 했지만, 11일 담뱃값 인상 등을 논의하는 당정회의에서 김 대표가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재정 건전성을 놓고 한바탕 설전을 벌인 것도 이런 심리상태와 무관치 않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김 대표는 정국이 어려울수록 대통령과 만나 대화하며 함께 정국을 돌파해 나가길 원하는데 김 실장 등이 그런 자리를 만들려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김 대표와 김 실장의 정치 스타일은 딴판이다. 김 대표는 ‘정치는 타협’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지만 김 실장은 원칙을 중시한다”며 “어느 한쪽이 변하지 않는 이상 양측은 앞으로도 불편한 동거를 이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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