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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군대가라 슛' 이영표 "후배들은 그런 실수 않겠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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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동국(左), 이영표(右)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이 축구로 막을 올린다. 개회식은 19일이지만 축구 예선은 14일부터 시작된다. 이광종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홈에서 열린 1986년 서울 대회 이후 28년 만에 우승에 도전한다. 14일 오후 5시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말레이시아와 조별리그 첫 경기를 시작으로 사우디, 라오스를 상대한다. 조 2위까지 16강에 오른 뒤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가린다.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지만 한국 축구는 아시안게임과 30년 가까이 인연이 없었다. 그 중 가장 뼈아픈 실패는 2002년 부산 대회다. 박지성·이천수·이영표·이운재가 포진한 역대 최강 멤버가 나섰는데도 우승하지 못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여세를 몰아 금메달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이란과의 준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졌다. 이영표의 승부차기 슈팅이 크로스바를 맞고 하늘로 치솟으며 경기는 끝났다. 축구팬들은 그 때 그 슈팅에 ‘이동국 군대가라 슛’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02 월드컵으로 병역 혜택을 받은 이영표의 실축으로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물거품이 되면서 이동국 등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 선수들의 병역 면제 혜택도 함께 날아가 버린 것을 비꼰 말이다.

 그 후로 12년이 흘렀다. 뼈아팠던 그 순간 심정이 어땠는지 이영표(37)와 이동국(35)에게 물어봤다. 두 선수는 그 때와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후배들에게 값진 충고를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미안했다”는 이영표는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이란과 준결승은 연장전까지 120분 동안 접전을 벌이고도 0-0으로 승부가 나지 않았다. 승부차기를 앞두고 그라운드에 일렬로 선 선수들은 ‘누가 키커로 나설 것인가’를 두고 서로 눈치를 봤다. 박항서 감독은 선수들에게 왼쪽부터 차례대로 물었다. “찰래? 안 찰래?” 하나같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극도의 긴장감을 견뎌야하는 승부차기에 키커로 나선 선수는 4명뿐이었다. 그리고 제일 오른쪽에 서 있던 이영표에게 박 감독이 다가섰다. 이영표는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키커 1명이 부족한 상황에서 고참인 내가 못하겠다고 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회심의 슛은 실축이 됐고, 이영표는 멍하니 공만 쳐다봤다. 당시 23세였던 이동국(35·전북)의 눈에선 찔끔 눈물이 나왔다.

 이영표는 “나는 월드컵 4강으로 군 면제 혜택을 이미 확정지은 상태였다. 그런 판에 페널티킥을 실축했으니 후배들에게 할 말이 없었다. 라커룸에 들어가서 동국이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래도 이동국은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는 “영표 형 슛을 보고 ‘군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아주 잘 다녀왔다”며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영표 형이 나에게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그 때 금메달을 따서 군대에 가지 않았더라면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해서 더 일찍 은퇴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동국은 올시즌 K리그 득점 1위(12골)를 달리고 있다. 최근 A대표팀에도 다시 뽑혔다.

 이영표와 이동국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노리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보다도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다. 금메달이나 병역혜택에 집착하면 몸이 뻣뻣해지고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는게 이들의 생각이다. 한국은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도 준결승에서 아랍에미리트(UAE)에 0-1로 무릎을 꿇었다.

 이영표는 “요즘 선수들은 군 면제보다는 국가대표로서 자부심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한다면 분명 우승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이동국도 “홈에서 관중의 응원을 받으며 경기를 하면 저절로 힘이 난다. 서로 단합한다면 28년 만의 금메달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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