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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각료회담|현해탄 사이에 둔 설전16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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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주로 다가온 한일각료회의를 앞두고 현해탄을 가운데 둔 설전의 파고가 높다. 외교상 나오기 어려운 극언이 잇달아 일본측에서 나오는가 하면 우리국민의 대일감정도 그에 따라 만만찮게 고조돼가고 있다. 그러나 진통을 겪더라도 한일수교 16년사의 얼룩을 이번에는 지워야 한다는데 양측이 이해를 같이 해가고 있는 것 같다. ○…한일정기각료회의는 어떤 점에서 양국관계의 정기점검 역할도 한다. 양국관계가 순조로울 때 각료회의는 순항했고 각료회의가 거르기라도 하면 이는 한일관계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한일국교정상화 바로 다음해인 작년 경제각료간담회를 모태로 출발했던 정기각료회의는 67년부터 지난78년까지 모두 10차례에 걸쳐 도오꾜와 서울에서 번갈아 열렸다. 연례회담이지만 문세광사건이 일어난 74년과 일본 록히드스캔들이 터졌던 76년, 그리고 10·26과 김대중사건 등으로 한일간에 파고가 높았던 79, 80년에는 각료회담이 열리지 못했다. 이처럼 한일정기각료회담은 바로 한일외교사의 한 압축도였다. ○…외무부 관리들은 『대일 교섭 이야말로 어떤 국가와의 교섭보다 어렵고 힘든 작업』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한일청구권협정에서부터 무역·항공·상표권협정 등 국교정상화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소 20여건이 넘는 정부간 각종 협정체결을 둘러싸고 우리외교실무자들은 자구하나 토씨하나를 놓고 한치도 양보하려들지 않는 일본측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느라 밤을 새우기가 일쑤였다. 그런가하면 초기에는 해태 몇속과 오징어 몇마리를 더 사가라고 촉구키 위해 우리측 대표단은 호혜평 등에 입각한 국제무역원리를 며칠이고 일본에 강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문세광사건으로 한일간에 파고가 높았던 74년 9월 당시 일본정부의 사과친서를 받아내기 위해 김동조외무장관은 장관실에 비상베드를 들여놓고 잠을 자야만했다. 정부는 대일단교의 파국을 각오한 채 「우시로꾸」(후궁호낭) 당시주한일본대사에게 『우리는 칼을 뺐다. 상대방이 우리보다 강할지 모르나 더 큰 상처를 입더라도 상대에 부상을 입힐 각오가 돼있다』고 다그쳤다. 당시 우신영차관 (현장관)은 『문세광 아닌 왕세광이 일본에서 사전모의 하고는 중공에 잠입해서 같은 결과가 일어났다면 일본이 과연 지금 한국에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소극적 자세를 중공에 취할 수 있었겠느냐』고 강경한 자세를 보임으로써 가까스로 일본측의 사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양국관계가 비교적 순탄했던 75년과 77, 78년에 치러진 일련의 각료회담의 순항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우리측이 긍정했던 데서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74년의 문세광사건 이후 1년9개월만에 열린 75년 제8차회담은 「회의를 열었다는 사실자체가 성과」라는 평가 위에 77년부터 시작되는 제4차5개년계획을 추진키 위한 6억달러 규모의 일본자본도입문제가 걸려 시종일관 부드러운 분위기를 우리측이 조성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1년을 다시 거른 뒤 77년에 열린 제9차회담은 바로 이 자본도입문제를 매듭짓기 위한 스마일 외교로 「무역역조는 일본 책임 아닌 우리쪽의 문제」라는 표현이 두드러졌다. 78년의 10차회담에서는 독도문제가 약방에 감초격으로 거론됐지만 바로 이번 각료회담의 일본측 수석대표인 「소노다」(원전직)외상이 『내 성격이 팔팔하고 드센데 박동진장관의 조용하고 차분한 설명에 설득 당했다』고 크게 선심이나 쓴 듯한 발언이 눈에 띈다. ○…만3년을 거른 올해의 한일정기 각료회담은 과거의 이 같은 현상을 답습치 않겠다는 정부의 새로운 스타일도 있어 예년보다 파란이 많다. 한반도의 안보현실과 2백5억달러에 이른 무역역조의 현실을 인정하고 대한경협을 대폭 늘리라는 한국측의 문제제기는 그것이 한번 해보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일본정부도 깨달은 듯 하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아직도 지난16년간의 한일관계실상을 무시한 「될 법 없는 무리한 주문」으로, 그리고 이 제의를 고수하는 노장관의 접근방식을 『외무장관으로서 그럴 수 없는』방식이라고 규정하려는 자세다. 외상회담을 전후해서 나온 「소노다」외상의 대한 장외발언과 독도문제의 제기 등은 이러한 한국의 강경 입장에 대한 역공인 셈. 그래서 올해의 각료회담은 초반부터 링 밖에서의 설전이 두드러져 양국이 자칫 자유진영의 일원으로서 손을 잡기보다는 양국관계발전을 위해 버리지 않으면 안될 해묵은 감정대결의 분위기에서 열릴 우려마저 자아내고있다. 이번 각료회담에 대해서는 제3자, 특히 미국의 관심도 높다. 지금까지 미국의 일관된 정책은 일본 중심적이었지만 서방진영에서의 일본역할과 부담 증대요구가 점점 커지는 정세변동과 함께 최근 WP·NYT 등 미국의 유력 언론들은 새로운 한일관계의 정립과 안보경협을 주장하는 우리 입장에 귀를 기울이고 일본의 이중적 자세에 비판을 가하는 논문 「마이클·아머코스트」미국무성 동아시아-태평양담당부차관보가 지난3일 일본에 대해 대한 경협 확대를 지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겠다. ○…국내 대부분의 정치인들도 한일간의 원만한 관계가 양국뿐만 아니라 자유진영 전체를 위해 필요하다는 대국적 차원에서 한일각료회담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이종질민정당총무는 『양국이 이성적 차원에서 최근의 과열을 서로 자제할 필요가 있다』 고 강조하고 있으며 이종성·이성수 (이상 국민)의원들도 같은 의견. 한영수민한당정책심의회의장, 김영광의원(국민)등도 『여유를 갖고 임해야되며 일본의 입장도 이해하면서 회담을 끌어나가야 된다』는 역시 비슷한 주장이다. ○…11차 한일정기각료회담은 연12억달러 규모의 경협문제 절충이 최대현안이다. 일본측은 아직은 연3억달러가 최대상한선이라는 입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억달러와 3억달러의 갭은 적지 않다. 그러나 한일간에 걸려있는 보다 더 큰 갭은 경협 규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를 부르짖고 나선 지 16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양국민의 의식저변에는 전혀 새롭게 인식되어지지 않는 상호간의 뿌리깊은 불신의 갭이라는게 한 주한외교관의분석이다. 내주로 다가온 한일각료회담이 지난 한주일동안 앙칼지고 변덕스러운 성미를 마음껏 부리고 물러난 태풍애그니스처럼 또 한차례 바람을 몰고 올지는 짐작키 어렵지만 한일양국이 이제는 다같이 슬기를 발휘해볼 시점에 온 것만은 분명하다. <유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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