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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직속 인문정책委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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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참여정부에 인문학 정책이 있는가." 인문학 관련 학자들이 잇따라 참여정부에서 좁게는 인문학, 넓게는 학술 정책의 부재를 지적하고 있다.

지난 18일 문화연대.학술단체협의회 등 6개 문화.학술 시민단체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노무현 정부의 학문정책 개혁과제 토론회'에서 이 같은 주장이 나왔다. 같은 날 교육인적자원부 기초학문육성위원회가 개최한 '기초학문 육성의 중장기 과제' 토론회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런 문제는 25일 오후 2시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실에서 국어국문학회.역사학회.한국철학회 회장을 비롯, 전국대학인문학연구소단체협의회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릴 인문정책연구위원회(위원장 김여수) '참여정부에 바라는 인문정책의 방향' 심포지엄에서 재차 거론될 예정이다.

인문학의 위기론이 나온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문제는 그것이 단순히 그 전공 학자나 학생의 위기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전망 부재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대 강내희(영문학)교수는 "경제발전 중심의 20세기적 삶의 양식이 환경.민족.계급.성.세대.지역갈등을 양산하고 있는 마당에 지속 가능한 문명발전은 인문학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서울대 김남두(철학과) 교수가 25일 심포지엄에서 '기초학문 육성의 중장기 과제'라는 기조발제를 통해 "우리 지식사회가 '지식의 수용단계에서 지식의 산출단계로 이행'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에 걸맞은 학술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따라서 인문학자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5일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중앙대 박경하(사학과)교수는 "현재 인문학의 위기는 단순히 대학에서 인문학의 고사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정체성과 발전전략의 부재와 연결된 것"이라고 전제하고 "바로 이런 이유로 인문학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개입을 더이상 미룰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경제적 지원'으로 미봉하는 정책이 효과를 거둘 것 같지 않다. 충북대 유초하(철학)교수는 "학문정책이 교육정책의 하위에 포섭됨으로써 독자적인 정책 없이 단지 경제적 지원만 해왔던 것이 현실"이라며, "이제는 정책적으로 인문학을 재구조화하지 않으면 인문학은 물론 우리 사회 전반의 위기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의 공통적 요구는 대통령 직속 인문정책위원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대학의 편재 개편, 인문학 거점센터, 인문학 교육의 다양화 등 다양한 제안이 제기되었으나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처럼 대통령 직속으로 인문정책을 총괄하는 위원회를 둠으로써 인문적 지식의 생산.교육.활용 전반을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하다는 지적이다.

교육의 한 방편으로 인문학.학술정책을 바라보는 지금의 구조 속에선 올바른 인문학, 학술정책을 수립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더욱이 지금은 그나마 있던 교문수석 자리도 없어져 학계의 의견을 전달할 통로마저 사라져 버린 상태다.

이 같은 제안은 지난 18일 열린 문화.학술시민단체들에 의해 공식 제기됐으며, 25일 열릴 인문정책연구위원회에서도 국어국문학회.역사학회.한국철학회 등 인문학의 대표적 학회와 전국의 대학인문학 연구소 대표들이 참가한 가운데 공식 제안될 것으로 보인다.

이 구상은 미국의 대통령 직속 국립인문재단(NEH)에서 따온 것인데 이미 유럽과 미국의 경우 문화적 정체성과 지성적 뿌리를 산업의 핵심으로 파악, 활발한 인문학 지원사업을 펴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국민의 정부는 '신지식인'등 실용 학문에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인문학은 물론 학술 전반의 위기를 심화시켜왔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학자들은 김대중 정부의 대표적 실패로 지식정책을 꼽을 정도다.

역시 25일 발표하는 동국대 홍윤기(철학)교수는 "참여정부의 원리와 목표는 인문학적 보편성을 가진 가치와 활동양식을 대거 국가정치에 투입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라 규정하고 참여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인문적.문화적 인프라'를 사회적으로 재구조화, 정착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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