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세수 중 1조 안전예산 투입 … "사실상 증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11일 KT&G 신탄진공장에서 한 직원이 담배를 살펴보고 있다.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정부는 11일 담뱃값 인상안을 발표하면서 흡연율을 낮춰 국민 건강을 증진하겠다는 목표를 앞세웠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담뱃값을 2000원 정도 인상하면 가격 인상만으로 흡연율을 8%포인트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 남성 흡연율(19세 이상 성인)은 43.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흡연율(26%·15세 이상 남성)의 두 배 수준이다. 이를 2020년까지 29%로 낮추기 위해서는 가격 인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004년 담뱃값을 500원 올린 뒤 흡연율이 하락한 것을 근거로 들었다. 2004년 57.8%였던 흡연율은 2005년 50.3%, 2006년 45.9%로 떨어졌다. 하지만 담뱃값 인상이 기존에 부과하던 담배소비세·지방교육세 등 세금과 건강증진부담금을 인상하는 데 더해 새로운 세금인 개별소비세(국세)를 신설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힘에 따라 "국민 건강을 명분으로 한 사실상 증세 조치”라는 지적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담뱃값이 2000원 오르면 전체 세수는 연간 2조8300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가격 인상으로 담배 소비가 34% 줄어든다는 것을 감안한 것이다. 세부 항목별로는 ▶개별소비세 1조600억원 ▶건강증진부담금 8700억원 ▶지방세 7600억원 ▶부가가치세 1000억원 ▶폐기물부담금 400억원 등이다. 개별소비세 중 40%는 지방자치단체로 이전된다. 기재부는 “개별소비세로 걷은 1조600억원(지방세 이전분 제외)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 예산 확충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정은 내년도 안전 관련 예산을 2조원 증액한다는 방침이다. 늘어나는 안전 예산의 절반 정도는 담배세에서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담뱃값이 인상되면 지방자치단체에도 7600억원 정도의 세금이 돌아간다. 지자체는 이를 기초연금·무상보육 등 복지·교육과 같은 사업 예산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복지 예산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지자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추가 확보되는 건강증진부담금 8700억원 중 상당액을 금연 치료와 청소년 금연 사업에 우선 사용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를 위해 금연사업 등에 사용하는 건강증진부담금 인상폭을 지방세보다 키웠다. 금연과 관련된 상담과 진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했다.

 개별소비세가 종가세 방식으로 도입됨에 따라 담배 가격이 높을수록 세액이 높아진다. 이 때문에 값싼 담배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문 장관은 “담뱃값의 80~90%를 차지하는 세금과 부담금이 종량세이기 때문에 충분히 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담뱃값이 인상되면 소비자 물가도 오를 수밖에 없다. 담뱃값이 2000원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0.62%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최근 물가안정기조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담뱃값이 오른다고 해도 물가안정목표 안에서 관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달 중 담뱃값 인상을 위한 국민건강증진법·지방세법·개별소비세법 개정안을 만들어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담뱃값이 최종적으로 확정되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변수다. 문 장관은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 보고에서 가격 인상 필요성은 인정하는 분위기였으나 일부에서는 서민 경제에 대한 부담을 우려했다”고 전했다.

김원배·박현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