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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통신] "그날 우리집에 천둥이 쳤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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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쾅!'소리와 함께 온 몸이 하늘로 솟구치는 것 같았어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보니 벽이 무너졌는지 방 안에 돌덩이가 그득해요. 깨진 창문으로 검은 연기가 들이쳐 사방이 안 보이고요. '집이 무너진다'는 생각에 문고리를 잡아당겼지만 꿈쩍도 안해요. 있는 힘껏 몸을 부딪쳐 문을 부수고 뛰쳐나갔죠. "

미군의 바그다드 진입으로 이라크전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던 지난 5일. 시내 서부 알만수르 주택가에 미군의 정밀 폭탄이 떨어졌다. 가옥 4채가 완파됐고, 주변 가옥 수십채도 크게 훼손됐다.

미군이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은신처'라고 판단했던 이곳을 피폭 보름 만인 20일 직접 가봤다. 지름 10m.깊이 7m가 넘는 커다란 구덩이가 흉측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었다. 구덩이 주변 한 모퉁이엔 장미꽃 몇 송이가 놓여 있다. 폭격으로 숨진 아이의 잘려나간 머리가 발견된 곳이다.

당시 폭격으로 시민 8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러나 미군의 폭격대상은 파손된 가옥들이 아니었다. 정작 목표였던 건물은 폭심지 수십m 밖에 멀쩡히 서 있다. 폭격 다음날 "후세인이 폭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발표했던 미군은 아직도 후세인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전쟁의 참상이 생생히 각인된 이곳은 요즘 하루 수백명의 바그다드 시민이 찾는 '명소'가 됐다. 쑥대밭이 된 가옥들 사이로 인기척이 들리는 한 집을 찾았다. 집이라기보다는 폐허가 맞다. 인터뷰 요청에 불쾌한 표정을 짓는 집주인 파딜 살만(73)할아버지를 어렵게 설득해 집 안으로 들어섰다.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 부엌. 거실.2층 침실 등 모두 벽이 무너져 있거나 금이 가 있다. 3대 가족 7명이 오순도순 살아가던 아늑한 집이었다. "할 말이 없다"며 고개를 떨어뜨리는 살만 할아버지 대신 딸 바스마 주마(49)가 입을 열었다.

"그날 미군이 바그다드 코앞까지 들어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가족 모두 집에 틀어박혀 있었어요. 보건부 공무원인 남편은 '미군이 주택가를 때릴 리 없다'고 저와 아이들을 안심시켰어요. 그렇게 말한 남편이 폭격으로 다칠 줄이야…."

폭격 당시 2층 침실에 있던 남편은 머리와 가슴에 파편을 맞고 알만수르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중상이지만 생명엔 지장이 없다고 한다. 한가족처럼 지냈던 옆집 식구들은 폭격 직전 담배를 피우려고 집 밖에 나갔던 아버지만 빼고 전원 목숨을 잃었다.

바스마 가족은 피폭 직후 서둘러 고모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다가 3일 전부터 버려진 가재도구 중 쓸 만한 것을 찾기 위해 이곳을 들르고 있다. "이곳에선 소름이 끼쳐 한시도 살 수 없어요. 당분간 고모댁에서 지내면서 새 집을 구할 생각이에요."

그녀의 아들 누으만(22)은 "잘려나간 아이 머리를 본 여동생 누라(19)가 보름째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있다"며 "미국과 후세인의 욕심 때문에 우리가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느냐"며 울부짖었다.

유구무언(有口無言)으로 집을 나서는 기자에게 여덟살배기 막내 이맘이 조용히 말했다. "그날 천둥이 우리집에 왔어요."

서정민 중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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