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건전성 놓고 한 판 붙은 김무성·최경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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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의도 실세’와 ‘여의도 밖의 실세’가 한 판 붙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최경환 경제부총리. 요즘 여권에서 가장 뜨는 두 사람이다. 김 대표는 당과 국회에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는 중이고, 최 부총리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 사령탑이다. 이런 두 사람이 11일 재정건전성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최 부총리가 이날 오전 담뱃값 인상을 설명하기 위해 참석한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다. 시중에서 ‘초이 노믹스’라 불리는,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치는 최 부총리에게 김 대표가 반론을 펴는 모양새였다. 공개 회의에서부터 심상찮았다.

 ▶최 부총리=“내년도 예산안 관련해 재정건전성에 대한 논란이 다소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내년도 예산의 재정적자 규모는 2.1%로 충분히 관리 가능하다.”

 ▶김 대표=“적자 규모가 GDP(국내총생산) 대비 몇 프로인가.”

 ▶최=“35.8%다.”

 ▶김=“정부가 (공기업 부채를 포함하는)새 계산법을 지난해 만들지 않았나.”

 ▶최=“공기업 부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35.8%는 국제 기준에 부합한다.”

 비공개 회의에선 대화가 논쟁으로 번졌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올해 세수가 8조5000억~9조원 정도 덜 걷힌다”고 보고하자 김 대표가 “세수가 이렇게 덜 걷히는데, 재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서 재정적자 논쟁이 계속됐다.

 ▶최=“30%대는 안정적인 수준이다.”

 ▶김=“공기업 부채도 포함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수자원 공사는 빚이 수조원대다.”

 ▶최=“재정건전성을 논의할 때 공기업은 제외한다.”

 ▶김=“왜 그런가.”

 ▶최=“미국 등 해외에서도 그렇게 한다.”

 ▶김=“미국은 공기업이 없다. 공기업 부채를 포함하면 재정적자 규모가 60%를 넘는다.”

 두 사람의 대화는 김 대표가 “재정건전성 논의에서 비공개는 의미가 없다. 마이크를 켜고 발언하자”고 하면서 외부로 새나왔다. 이날 논쟁은 재정정책에 대한 두 실세의 인식 차를 드러내는 단면이다. 최 부총리는 취임 직후부터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국가가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김 대표는 재정 균형론자에 가깝다. 그는 지난해 10월 각 회계연도의 재정수입과 지출이 원칙적으로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때문에 내년도 예산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당정 마찰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담뱃값 인상 놓고도 충돌=정치권은 이날 정부의 담뱃값 2000원 인상안을 놓고 갑론을박했다. 새누리당 권은희 대변인은 “(인상은)불가피한 흐름”이라고 정부안을 옹호했다. 그러나 당 내부에서도 반론이 만만찮다. 최고위원회의에서 서청원·이인제 최고위원 등은 서민층 반발이 클 거라며 반대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담뱃값 인상은 사실상의 ‘우회증세’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은 정책간담회에서 “담배세·주민세 인상은 시민을 울리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서민증세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10년 전인 2004년에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담뱃값을 500원 올리면서 이듬해 500원을 더 올리기로 했다. 그러나 담배 사재기가 기승을 부렸고, 흡연자· 담배 판매자들의 반발이 극심해지자 인상을 늦추다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없던 일로 했다.

권호·천권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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