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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늘어나는 기아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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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회복지회관 입양사무실. 낯선 장소, 처음 보는 얼굴들에 둘러싸인 돌쟁이는 사슴 같은 눈망울을 두리번거리며 자꾸만 엄마 품을 파고든다.
젊은 엄마 정모양(21)의 눈에 눈물이 핑돈다. 『외국으로 보내주세요. 다시는 만날 수 없게요. 오늘아침 속옷이랑 포대기를 새로 갈았습니다. …아가야, 좋은 양부모 만나 행복하게 살아야돼, 응?』
글썽했던 눈물이 주르륵 아기얼굴에 떨어진다.
『자, 그럼…아기를 주세요.』 상담원이 아기를 받으려는 순간 아기는 『으앙』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낯선 아줌마 품에서 발버둥을 친다.

<기아 수는 발표안해>
『걱정 마세요. 이제 아기는 잊어버리고 새출발 하세요.』
상담원의 위로를 뒤로한 채 젊은 엄마는 얼굴을 감싸쥐고 계단을 뛰어내린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비수 되어 자꾸만 자꾸만 가슴을 찌르는 것이다.
혈육의 정이 끊어지고 한 인간의 운명이 달라지는 순간이다.
『언니네 집에서 1년을 키웠어요. 모두가 손가락질을 하는 것 같아 외출도 못했지요. 애비없는 자식…한두마디 말을 배우면서 「엄마」하고 부를땐 더이상 정이 들기 전에 양자로 보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정양은 부모몰래 언니의 도움으로 분만까지 한뒤 1년을 키우다 친권을 포기한 미혼모케이스.
그러나 그 정확한 숫자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많은 책임 없는 생명들이 미혼모들에 의해 산속·강가·한적한 빈터에 버려지거나 남의집 대문 앞에 놓여지고 있다.
『입양기관이나 상담소를 찾는 미혼모는 인간적으로 착한 사람들이예요. 혼자의 힘으로 너무 미약할 때 도움을 청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까? 어떤 형태든 생명의 유기, 그 행위는 저주스러운 겁니다.』
동방아동복지회 수석상담원 김영숙씨(45)는 입양기관에 위탁한 아이들은 좋은 가정에 들어가 좋은 교육을 밭으며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부는 75년 이후 기아와 해외 입양숫자를 공표하지 않고 있다. 그이전 통계로는 74년 6천9명의 기아가 발생했다. 73년엔 5천9백48명.
지난해 국내입양숫자는 3천3백45명 (보사부집계), 해외입양과 입양이 안된 숫자를 포함하면 현재는 연간 적어도 8천∼9천명의 어린 생명이 버려지고 있을 것이란 추산이다. 그 70%쯤은 미혼모를 엄마로 둔 「축복 받지 못한 생명」들. 『숫자는 밝힐 수 없습니다만 기아가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미혼모의 아이 아니겠습니까. 큰 일이에요, 정말….』
서울 내곡동 서울시립아동병원 서무과장 민병천씨(50)는 심각한 표정이다.
그러나 국내든 국외든 일단 입양이 이뤄지면 사회사업가들에 의해 6개월간 사후지도가 이뤄지고 호적등재까지 종결지어 주고 있다.
이럴경우 아동들은 성격발달과 정서적인 면에서 정상을 찾을 수 있고 모성적인 보호의 지속을 가능케 하는등 좋은 결과를 얻고 있는 것으로 사회사업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미혼모들이 입양알선기관·상담소등을 찾으면 출산에서부터 입양 또는 직접 양육등 좋은 해결책을 구할 수 있는데도 아직도 혼자 고민하다 아무 곳에나 버리는 비정한 사래가 많다.
6월초 어느날 새벽6시쯤. 서울 동부이촌동 박모씨(37·회사원)는 아침 조깅을 하려고 대문을 나서다 대문 앞에서 보자기에 싸인채 파랗게 질려 울고있는 갓난아기를 발견했다.
보자기 속에는 꼬깃꼬깃 접은 노트한장. 『죄송합니다. 절대 찾지 않을 테니 부탁드립니다. 못된 엄마 올림. 생일 1981년 6월 10일.』 깨알같은 볼펜글씨로 적어놓았다.
박씨는 우선 아기를 데리고 집에 들어가 부인과 상의했으나 결국 파출소에 신고. 파출소에선 느닷없이 우유병을 사온다 기저귀를 구해온다 하며 법석을 떨다 수용시절로 보냈다.
서울 내곡동 서울시립아동병원 신생아실·영아실·정형외과 병동엔 이들 기아들로 방마다 항상 만원. 신생아실 5∼6개의 인큐베이터는 미숙아인 채 버려졌던 아기들로 연일 비어있을 틈이 없을 정도다. 우리사회의 어둡고 서글픈 또다른 한면이다.
이런 아기들일수록 표정이 없어지고 거의 울지도 않는다고 한다.
간호원 한상눈씨(35)는 『부모 품에서 한참 귀여움을 받을 시기인데 이토록 가혹한 벌을 받아야 한다니 너무 불쌍하다』며 『앞으로 어느 곳으로 옮겨져 어떤 삶을 꾸려갈지 저들의 부모들이 원망스럽다』고 말한다.

<심신장애아도 많아>
현재 시립아동병원에 수용돼 있는 기아는 모두 3백여명. 이들중 90%가 현재의 원장 신현삼씨의 성을 딴 신씨들이다. 신꽃님 신웅장 신순이 신철수….
기아중 80%이상이 미숙아이거나 각종 질병에 결려있는 것으로 집게되고 있다. 발견되기까지 시간이 경과됐기 때문이다.
폐렴등 호흡기 질환자가 가장 많고 또 심신장애 아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범했던 실수를 자칫 잘못 판단하여 신이 용서 못할 죄악을 저질러서는 안됩니다.』
대한사회복지회 상담원 김봉희씨(24)는 미혼모들이 자신의 장래와 아기의 행복을 위해 고민하지 말고 각 사회단체의 상담소를 찾는 용기를 가져야겠다고 말했다. <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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