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삼치 풍년인데 … 어민들 한숨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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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이전엔 세월호 사고가 나기 전 서해 5도 어민들은 사진처럼 잡은 수산물을 스티로폼·플라스틱 상자에 넣어 카페리 여객선에 아무렇게나 실어 날랐다. 운송 규정을 철저히 지키는 지금은 반드시 상자를 차량에 싣고, 차량은 배에 고정해야 한다. [중앙포토]

“3㎏짜리 큰 삼치 한 마리에 우럭 한 마리 끼고 작은 꽃게 서너 마리 얹어 1만원에 팔지요.”

 인천시 옹진군 대청도에서 어선을 운영하는 최철남(42)씨. 그는 요즘 조업 나갔다 들어오면 잡은 꽃게와 생선의 절반 정도를 이렇게 팔아 치운다고 한다. 손님은 주로 항구에 온 관광객들이다. 최씨 표현에 따르면 “헐값 세일”하는 것이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고기와 꽃게는 ‘풍어’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잡히는데 육지에 내다 팔 운송 수단이 부족해서다. 세월호 사고가 난 뒤 화물 적재 기준을 엄격히 지키다 보니 생긴 일이다. 최씨는 “냉동창고에도 여유가 별로 없어 한배 가득 잡아온 꽃게와 생선을 보관할 수가 없어 절반가량을 즉석 세일하는 것”이라며 “때론 고기잡이를 않는 이웃들에게 공짜로 나눠주며 인심을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씨뿐 아니라 백령도·연평도·대청도 등 서해 5도 어민들은 대부분 이런 ‘현지 할인 세일’을 하고 있다. 종전에 서해 5도 주민들은 꽃게와 물고기가 많이 잡히면 잡히는 대로 어물전에서 흔히 보는 스티로폼·플라스틱 상자에 넣어 카페리 여객선에 실어서는 뭍으로 보냈다. 차량을 싣는 칸에 상자를 그냥 척척 쌓아 운송했다. 하지만 세월호 사고가 난 뒤에는 그럴 수 없게 됐다. 반드시 짐을 차량에 실은 뒤 차를 배에 단단히 묶어야만 한다. 일단 일부 어민이 갖고 있는 트럭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모자랐다. 그래서 옹진군은 지난 5월 5t 트럭 두 대와 1t 트럭 한 대 등을 긴급히 임대해 수산물 운송용으로 썼다. 그것도 모자랐다. 트럭에 서로 웃돈을 줘가며 자기 짐을 실으려고 했다.

 그나마 옹진군이 임대했던 트럭마저 예산이 바닥나 8월 말로 운송을 중단했다. 하필 꽃게를 잡을 수 없는 금어기(禁漁期)가 끝나고 지난 1일 꽃게잡이를 다시 시작할 시점에 운송 수단이 사라졌다.

 잡은 수산물 상당 부분을 뭍으로 보낼 길이 없어진 어민들은 ‘현지 세일’을 시작했다. 심현주(50) 대청도 옥죽어촌계장은 “어민들에게도 추석이 대목인데 올해는 주문이 들어와도 육지로 운반을 못해 벌이가 지난해의 절반 정도로 떨어졌다”며 “꽃게와 생선은 풍년인데 돈은 못 버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은 앞으로도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1일 다시 시작한 꽃게잡이가 본격적인 제철에 들어서면 뭍으로 실어 날라야 할 운송 물량이 더 늘 것이기 때문이다.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 임양재 박사는 “올해 서해 5도 바닷물 온도가 평년보다 1도 정도 높아져 꽃게가 살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고, 실제 어린 꽃게 개체 수 또한 1년 새 10% 이상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며 “올가을 꽃게 어획량이 지난해보다 20~60%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온이 높아지면서 따뜻한 물에서 사는 삼치·우럭·노래미까지 서해 5도에서 덩달아 많이 잡히고 있다.

 옹진군 탁동식 교통행정팀장은 “수산물을 더 많이 실어 나를 수 있도록 카페리 여객선의 차량 수송칸을 화물칸으로 바꾸는 것을 추진 중”이라며 “구조 변경을 점검하는 한국선급이 안전에 이상이 없는 한 최대한 빨리 승인을 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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