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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가 도시 정체성 좌우 … 기억 잃은 도시엔 미래 없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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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호 23면

문화도시란 역사성을 바탕으로 자기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공공성이 확장되고 보장되는 도시다. 역사성과 정통성, 유기적인 문화 인프라와 문화 정책, 개성적인 문화 공간과 도시경관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나라에 문화도시라는 개념이 도입된 것은 2001년 개정된 도시계획법에서 문화도시를 시범도시로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면부터다.

창조·문화도시의 조건

 서울·전주·경주·공주·부여·익산은 문화도시로 손에 꼽을 만한 고도(古都)다. 하지만 많은 외침과 한국전쟁, 급격한 산업화로 옛 모습을 대부분 잃었다. 그나마 서울의 5대 궁궐, 전주 경기전, 경주 첨성대, 공주 공산성, 부여 낙화암, 익산 미륵사지는 훼손되기는 했지만 옛 모습이 어렴풋이 남아 문화도시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백제 역사의 전반기 500년 역사를 간직한 한성백제의 실체가 고구려에 패망한 이후 사라졌습니다. 백제의 도읍지인 부여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 모두 불탔고, 몽고의 침입으로 황룡사를 비롯한 신라 왕경의 중요 건축물들이 석조유구와 도로유구만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라졌죠. 우리 옛 도시가 대대적인 공간 구조 변화를 겪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때입니다. 전쟁이 단기간에 걸쳐 일어난 전통문화 공간 파괴라면, 일본 식민지 기간은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진행된 전통문화 공간 훼손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한국감정원 채미옥 부동산연구원장의 지적이다.

 급격한 산업화는 전통 도시를 몰개성의 밀집주거공간으로 만들어버렸다. 경주시의 경우 1980년 도심에 4층짜리 아파트 23동이 건립되면서 도심의 경관이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부터는 북천 이북 지역에 9층에서 20층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건설됐다. 백제 수도였던 공주의 옛 도심은 금강 이남이었다. 지금은 강북에 신도시가 생겨나 도시의 얼굴이 크게 변모했다.

 도시 문화 정체성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시민들이 가장 중시하는 게 전통문화(23.5%)였다. 대중문화·엔터테인먼트(19%), 관광 및 쇼핑(17.9%)이 전통문화 다음으로 많았다. 도시의 정체성은 도시에 쌓인 기억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하나의 표상이지만, 기억은 우리를 영원한 현재에 묶어두는 끈이다. 기억이 없는 도시는 미래가 없다.

 모종린 교수의 저서 『작은 도시 큰 기업』에 따르면 산업화가 반드시 문화도시를 훼손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정체성이 없던 도시에 뚜렷한 특징을 부여하기도 한다. 외국의 경우 말고도 울산과 중공업, 포항과 광양의 제철, 수원과 반도체가 좋은 예다. 특정 도시를 거점으로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은 다른 도시와 색다른 도시문화를 만든다. 그 기업이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도시문화를 만들어 가는가, 아니면 과거의 기억을 토대로 그 위에 새로운 기억을 덧쌓아 가느냐가 중요하다. 기억을 찾아가는 문화도시 만들기, 우리 시대 한국 문화계의 또 다른 사명이다.

김종록 객원기자·문화국가연구소장 kimkisan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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