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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선택 … 6·25와 5·18이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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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제10회 광주비엔날레 개막 퍼포먼스 ‘내비게이션 아이디’에 참여한 5·18 희생자 유족들(버스 앞)이 3일 오후 경북 경산에서 4시간 걸려 도착한 경산코발트광산 유족들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 광주비엔날레재단]
미국의 에드워드 키엔홀츠(1927∼94)와 부인 낸시 키엔홀츠의 ‘오지만디아스 퍼레이드’(1985).

3일 오후 3시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앞마당. 구급차와 버스, 컨테이너 두 동을 실은 트레일러가 들어왔다. 경북 경산과 경남 진주에 방치돼 있던 6·25 전쟁 희생자 유골이 든 컨테이너다. 버스에서 내린 유족들은 검은 천으로 눈을 가렸다. ‘이데올로기의 인질’이라는 의미였다. 기다리던 광주 5·18 희생자 유족들이 이들의 손을 잡았다. 6·25의 비극과 광주의 비극이 만났다. 함께 추모제를 지낸 이들은 더러 눈물을 훔쳤다. 임민욱의 광주비엔날레 개막 퍼포먼스 ‘내비게이션 아이디’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이 인간성의 근본이라는 취지였다.

 종일 내린 비로 촉촉해진 전시관 앞마당에는 미국 작가 스털링 루비가 설치한 대형 스토브 두 대에서 연기가 피어올랐고, 전시장 외벽엔 불난 집에서 탈출하는 커다란 문어가 이 모든 장면을 지켜봤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영국관 대표 작가였던 제레미 델러의 작품이다.

  제10회 광주비엔날레가 5일부터 11월 9일까지 66일간 열린다. ‘터전을 불태우라(Burning down the house)’는 도발적 주제를 내걸고 광주비엔날레 전시관과 인근 중외공원 일대에 38개국 111명(103개팀)의 413점을 전시한다. 주제는 1980년대 미국 펑크록 그룹 토킹 헤즈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 총감독 제시카 모건(46, 영국 테이트 모던 수석 큐레이터)은 “한국은 급성장 과정에서 많은 것을 잃었다. 터전을 불태운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구축하기 위한 행위다. 물질이 타고 나면 다른 것으로 변한다”고 설명했다.

 작품 중에는 식민지부터 분단, 경제성장과 양극화에 이른 우리의 터전에 대한 직설이 많았다. 김성환의 영상 ‘게이조의 여름-1937년의 기록’은 스웨덴 동물학자이자 여행가인 스텐 베리만(1895~1975)이 남긴 ‘경성(게이조) 여행기’(1937년)에 기초한 허구적 다큐 영상이다. 미국 미술가 샤론 헤이즈의 ‘우리는 이 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둘 수 없다’는 지난해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운동이 시작된 고려대에서 찍은 현수막 설치 영상 작업이다.

◆기획·연출·주제의 통일성 돋보여=전시장 안팎에는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듯한 벽지(엘 울티모 그리토), 숯 설치(코넬리아 파커), 집 모양 구조물(우르스 피셔)과 아파트 창문(레나테 루카스) 등 터전과 불에 대한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유진상 2012 미디어시티 서울 총감독(계원예대 교수)은 “수많은 작품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비엔날레는 산만해지기 쉬운데 시의적절한 주제, 이를 일관되게 드러낸 기획과 연출의 통일성이 돋보였다”고 평가했다.

 우리의 터전은 어떤 곳인가. 불태워야할 것은 무엇이며, 그 과정에서 잃는 것은 또 무엇을까. 타고 남은 자리는 어떻게 변할까. 입장료 성인 1만4000원, 만4∼12세 4000원. 062-608-4114.

광주광역시=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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