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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의 바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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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조선조 제일의 바둑고수는 김종귀였다. 90세를 넘게 살았지만 바둑을 놓지 않았다. 그의 뒤엔 김한흥·고동·이학술이 고수였다.
늙은 종귀와 젊은 한흥이 내기바둑을 둔적이 있었다. 늙고 병든 종귀는 바둑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것같이 두었다.
바둑은 중반을 넘고 판세는 한흥이 유리했다. 종귀는 다음날 계속하기를 청했으나 구경꾼들은 용납하지 않았다.
종귀는 손으로 눈을 문지르고 한동안 관을 응시한후 묘수를 내어 흐르는 물을 끊고 관을 무찌르듯 판세를 뒤집었다. 모두가 놀라 감탄했다. 조호룡의 『호산외사』에서 전하고있다.
김종귀는 당시 타이틀은 없었지만 천하가 인정하는 최고수였다.
조치훈의 바둑은 도디어「천하제일」이 되었다. 일본의 3대 바둑 타이틀중 2개를 석권한 조치훈은 명실상부한 바둑의 최고수다.
작년에 24살의 어린나이로 「명인」위를 차지했던 그는 혼인보(본인방) 「다께미야」 (무궁정수)를 4대2로 이김으 지금까지 두 타이틀을 모두 지녔던 기사는 단 세사람. 「면도날」이란 별명을 듣던「사까따」(판전영남)와 중국인 천재기사 림해봉, 그리고 컴퓨터「이시다」(석전방부). 이들은 각각 60년대, 70년대를 대표하는 기계의 거인들이다.
조치훈의 양 대타이틀 보유는 80년대가 「조치훈의 시대」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요즘 조치훈은 여전히 컨디션이 좋다. 올해들어 29전24승5패의 놀라운 기력을 과시했다.
흔인보 도전리그에서만도 7전전방, 「다께미야」혼인보를 파죽의 3연승으로 밀어붙인 뒤 두판만 양보한 저력도 놀랍다.
『세판 이기고 욕심이 생겨서 두판을 잃었다』고 그는 승리후 술회했다.
『바둑은 조화, 승패는 달』 이라고 한때 일본기계를 주름잡던 중국인 천재기사 오청원이 명언을 남긴바 있다.
그러나 조치훈은 작년에 이렇게 술회한 적도있다. 『불현듯 깨달았읍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투지와 기백도 중요하지만 무심과 인고를 조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무심과 인고의 조화」. 천하제일의 기사로 성장한 조치훈의 말에는 벌써 달인의 경지가 엿보인다.
일본바둑의 제일인자가 된 그는 이제부터 공식·비공식의 특별대우를 받게된다. 수입도 연간 5천만엔 (1억5천만원) 을 넘게 되었다.
바둑인구 9백만명, 프로기사 3백44멈,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9단만도 5. 명인 일본기계에서 제일인자를 유지하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본의 바둑은 세계최고 수준이다. 그것을 머리로 이긴 한국의 젊은이 조치훈은 이제부터「무심과 인고의 조화」를 더욱 심화하는 험난한 길을 헤치며 걸어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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