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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화찬란한 자금성…방만 9천여개 호텔식당 서비스는 개선할정 많아|메이데이는 시가행진 없이 쉬는날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한국계 미국시민으로 구미유력지에 기고하고있는 언론인이며 저술가인「피터·현」씨는 중공대외우호협회의 초청을 받고 지난 5윌1일부터22일까지 배경·천진·상해·심양·하르빈 등지를 여행했다.「피터·현」씨는 중공의변천과정을 서방세계에 소개하고 선전했던 미국언론인 고「에드거·스노」의 부기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목적으로중공각지를 여행하면서 아울러변혁을 겪고있는 중공의 모습과 중공속의 우리동포들의근황을 취재하여 본사에 륵별기고했다.「피터· 현」씨는 특히 이 기고문에서 자신이 수년간 방문했던 북한과 이번의 중공방문의 경험을 토대로 중공과 북한사회를 비교·분석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편집자>
비행기는 중원의 하늘을 날고있었다. 창밖 구름사이로 힐끗힐끗 얼굴을 비치고는 뒤로 날아가는 중국의 대지를 내려다보며 나는 스승이자벗이었던「에드거·스노」씨의 말을 떠올렸다.
『…나의 일부는 언제까지나 중국에 남아있을 것이다.그 황토빛 구릉들,층층이 갈아놓은 선선빛의벌판, 아침안개사이로 촉촉히 떠오르는 절간들,누더기차림이지만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어린이들…그리고 그 무엇보다도,불결하고 굶주리고 아무런 댓가도 없이 천대만받는 저 시꼴뜨기 병사들, 스스로의 삶을 바침으로써 모든 삶을 값지게하고 한 위대한 국민의 투쟁을 높고 귀한것으로 만들어준 저벙사들과 함께-』
5월초하루였다.일본 나리따(성전)공항을 뜬지 3시간30분인 아침 10시45분,내가 탄 팬앰항공의점보기는 북경공항에 내려앉았다.
한국과 중공사이에 항공로협정만있었다면 서울에서 곧장 2시간남짓이면 올수있을 길이었다.

<묘한 기대에 부풀어>
트랩을 내려 땅을 밟는 순간 나는 묘한 홍분과 기대감에 횝싸였다.중국의 모든것을 보고 느끼고맛보리라는 그런 기대였다.
임국검사대의 젊은정복관리는 내여귄의 임국사층을 흘낏 보고는 도장을 쿵 찍어주면서 짐찾는데로 가라고 손짓했다.다녀보던중에도 가장 빠른 입국검사였다.
짐찾는 방에는 중화인민대외우호협회에서 나온 안내자가 기다리고있었다.조양령이라는,가무잡잡하게탄 얼굴에 안경을 낀 30대초반의청년이었다.
그가 앞장서자 세관관리듣은 내짐을 거들떠보지도않고 롱과시켰다.『우리 협회손님은 짐검사를 하지않죠』그의 설명이었다.
공항홀에서 기다리던 또한 사람의 안내자와 함께 우리는 검은색의 도요따세단을 타고 시내로 향했다.길에는 승용차는 많지 않았다.대신 버스와 자전거가 거리를메우고 있었다.
북경중심가인 장안가를 지나며 나는 조씨에게 물었다.
『메이데이 퍼레이드는 아직 안했겠죠?』
『요즘엔 공식적인 행진같은건 하지않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메이데이는 시민들이 편안히 쉬는 날로 바뀌었어요』
아닌게 아니라 10차선의 넓은길에는 쾌청한 휴일을 즐기려고 나온 사람들이 들끓고 있었다.
짐을 푼 곳은 북경에서 가장 좋다는 북형호텔이었다.잘닦여진 마룻바닥 한구석에 울리브및 털융단이깔린 내방은 욕탕시설이 조금 낡기는 했지만 중국식의 고풍스런 매력이 있었다.방이 마음에 든다고하자 두 안내자는 웃으며 대답했다.『「스노」씨의 친구는 곧 저희친굽니다.「스노」씨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면서도 우리를 진정으로 이해한 훌륭한 분이었죠.진실하고통찰력있고-」
『요즘 이곳에선「에드거·스노」란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돕니다. 그분이 쓴 중국에 관한책들, 특히「중국의 붉은별」같은책은 안읽은 사람이 없어요』
중국에 관한「스노」의명성은이곳에 와서도 마찬가지인둣 했다.『서양에서도 가장 뛰어난 중국혁명전문가로 알려졌어요.너무 일찍가신게 한이죠.그 양반의 꿈이던 미-중화해가 이뤄지기 꼭 한주일전에 그만 들아가셨거든요.』

<우아한 식당으로>
그는 생전에 언젠가는 내게 중국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하곤했다.그런「스노」는 가고 이제나혼자이곳에 와 있는 것이다.
조씨등은 나를 호텔식당에 안내하고는 2시에 다시 오겠다며 사라졌다. 높은 천장에서 번쩍이는 샹둘리에가 드리워쳐있는,예스런 장식의 식당이었다.나는 한 뉴욕친구의 충고를 생각했다.『중국식당에서 거의 빌다시피해야 얻어먹을수 있다네.속으론 어떤지 몰라도겉으론 손님들에게 볼친절하고 무관심하단 말이야.인내심을 총동원해야 될겉세』
정말 서비스는 지독히 느렸다.층고대로 얼굴에 옷으을 가득실어이리저리 흘려보냈지만 여종업원은거둘떠보지도 않았다.
간신히 타낸 음식은 꽤 맛있게 요리된것 같았지만 입맛은 이미 싹가신후였다.
『어차피 나라에서 윌급을 타니까종업원들이 열심히할 이유가 없어요. 보너스도 물론 없고.게다가 왠만하면 쫒겨나지도 앉거든요. 』외국에 나가있는 화교들하고 봉사정신이 어찌 그리 다를수 있냐고 오후에 찾아온 조씨에게 내가 불평하자 그가 예사롭게 해준 「설명」이었다.『자,이제 자금성이나 보러가십시다.』
자금성은 북경호텔에서 볼과 두 불록 떨어져 있었지만 우리는 아까의 검은 세단을 타고갔다고

<근거리도 차로안내>
아무리 가까운 곳이라도 반드시차에 태워 움직이는게 안내지침인모양이었다.
조씨는 천안문위의 누각용 가리키며 설명했다.『바로 저기서 1949년10윌l일 중화인민공화국건국을 선포했지요.이천안문팡장은옛날엔 평민들은 얼씬도 못하던 곳이었지만 인민공화국 건국이후는 싹달라졌어요.저기 광장가운데 있는게 혁명영웅기념관임니다. 저겉것는데 화강암파 대리석이 1만7전개나 들어갔답니다. 그뒤에 보이는게 77년에지은 모석간주석기념관이고, 광장서쪽 저것이 인민대회당입니다.건평으로는 자금성보다도 더커요.동쭉에는 중국역사박물관, 그옆이 중국혁명박물관이 랍니다』
중국의 전통양식과 현대건축양식을 섞어지은 이 건물들은 배경의천안문·자금성과 어우러져 묘한 느낌을 주었다.마치 중국의 어제와 오늘이 한자리에 모여앉은 듯 했다.
옛중국의 천자가 살던 왕성은 천안문뒤였다.
자금성은 중국에서 가잠 큰 궁성이며 옛가구·보물들도 많이 남아있다고 조씨는 설명했다. 『명조와청조의 24명의 황제가 이곳서 살았죠.방이 9천개가 넘고,성벽높이는 10m이상,주위엔폭52m의방어용 외??가 파여져 있어요』
왕궁의 내부는 현란했다.천자가앉았던옥좌·궁정·각종합로·보물등을 능숙하게 실명하던 조씨는 그려나 이제는 없는 왕족에 대한 평가도 잊지 않았다.

<외상도“잘 모셔라”>
『황제와 왕족들은 사치속에서 나태와 타락의 나날을 보냈지요.금과 은,옥으로 만든 접시에 담긴산해진미를 즉기면서 말입니다.그러는 동안에도 수백 수천의 농민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갔죠.농민들은 여러차례 봉기했어요. 자금성뒤쪽엔 농민군이 쳐들어 왔을때 명의마지막 황제가 목용때 자살한 나무가 아직도 남아있옵니다.』혁명과봉기얘기가 나오자 열기를 띤 조씨의 얘기는 배경호텔로 돌아오는 차속에서까지 이어졌다.
우호협술가 베풀어준 만찬은 세계적으로유명한「폐킹·덕·레스토랑」에서였다. 2층의 조그만 별실에서는 우호협회 부회장「혼·롱」씨와 협회임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은 몸이 불편해 못나오셨지만,황화외상께서도 현선생님을 잘모시라는 요청이 있았옵니다』라고말하며「혼·릉」씨는 다시 내가「에드거·스노」의 친구라는사실을 강조했다.
「스노」미망인에게 안부전해 달라는 말까지 잊지않았다.중국대륙에서「스노」란 이름은 마치 만능의 열쇠인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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