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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원복의 세계 속의 한국

중립적 시각은 가능할까? 인도 영화 '진정한 영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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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모디 인도 총리가 일본을 방문했다. 인도 수도 뉴델리의 관문은 인디라 간디 공항이다. 인도 공화국 역사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총리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만큼 그녀가 인도에 끼친 영향이 크다는 이야기다. 그녀의 이름은 남편 페르제 간디를 따른 것이지 인도 독립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녀는 초대 총리였던 자와할랄 네루의 무남독녀로 1966년 나이 쉰에 인도총리가 되었고 1984년 암살되었다. 아들 라지브 간디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되었으며 그 또한 1991년 암살당했다. 그녀의 며느리 소냐 간디도 인도국민당 총재가 되었고, 손자 라훌 간디 역시 유력한 총리후보였다가 올해 총선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인민당후보에게 져 꿈이 무산된 바 있다. 이처럼 인디라 간디를 비롯한 간디 가문은 인도를 지배하는 실세 중의 실세인 것이다.

 인디라 간디는 권위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정치스타일이었다. 거침없이 정책을 추진하고 현대 인도를 건설한 견인차 역할을 한 인물로 추앙된다. 구소련과 우호조약을 체결했고 동·서 파키스탄 전쟁에 개입하여 동 파키스탄(지금의 방글라데시)의 독립을 인정, 분쟁 종식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1980년 펀자브 지방의 시크교도들이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1982년에는 무장한 시크교도들이 암트리사의 황금사원을 거점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인디라 간디는 1984년 탱크를 앞세워 군대를 투입, 단호하게 무력 진압하여 수백에서 수천의 희생자를 내며 반란군을 굴복시키고야 말았다. 이에 격분한 시크교도 출신의 그녀의 경호원들이 10월 31일 TV회견 중 방탄조끼를 벗은 틈을 이용, 인디라 간디를 저격 암살하였던 것이다. 암살범들은 인도의 지도자를 시해하였지만 시크교도들은 그들을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다.

 이 암살범들을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 ‘진정한 영웅’이 지난달 22일 개봉하려다가 인도 정부에 의해 제지되었다. 영화가 또다시 시크교도들의 독립운동과 사회갈등을 자극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영화를 만든 라반데르 라비 감독은 암살범들을 영웅으로도 범죄자로도 다룬 것이 아니라 ‘팩트’를 다룬 ‘트루 스토리 1984’라는 것을 강조한다. 정확하게 3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을 재조명해 보자는 것인데, 그 결말이 어떻게 될지 자못 궁금하다. 진실을 내세워 과거의 상처를 들추어내는 게 옳은지, 아니면 심각한 사회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과거를 덮어야 할지는 한 사회의 성숙도의 문제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누구도 진정한 중립의 눈으로 이른바 ‘팩트’를 바라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