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조용한 혁명" …급격한 개혁엔 한계|「미테랑」의 프랑스, 어떻게 변하고 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프랑스와·미테랑」프랑스대통령은 요즈음 엘리제대통령궁에서의 간소하고 비공식적인 저녁식사를 즐기고 있다. 「지스카르」전 대통령시절과는 아주 딴판이다. 새 주인이 들어선 엘리제궁이 차차 모습을 바꾸어가듯「미테랑」사회당정부의 프랑스는 정치·경제·사회 등각분야에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또 보다 큰 개혁이 계획되고 있다. 사회당정부의 개혁정책은 어느 만큼의 강도로 어느 한계까지 추진될 것인가. 전통적으로 뿌리깊은 엘리트 관료조직, 보수적인 군부, 시장경제원리를 신봉하는 재계중진을 중심으로 한 경제계. 막강한 정치압력 요소로서의 노조세력 등 국가를 구성하는 여러 집단의 입장과 움직임이 개혁의 강도와 한계를 적극적 또는 소극적으로 규정해줄 것은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파리=주원상 특파원>

<국유화정책>
개혁정책 중에서도 의회의 승인을 필요로 하는 등 가장 어려운 부문으로 지적되는 국유화정책은 현재까지 시한과 일정이 거론된 일이 없을 정도로 정부도 신중히 다루고 있다.
「미테랑」행정부가 공약한 최저임금인상, 고용증대, 저소득층 감세안, 기간산업 국유화정책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기업국유화의 대상은 1차적으로 11개 업체에 이르고 있다.
74년의 선거공약에서 2백27개 기업을 주장(공산당은 7백29)한 것에 비해 대폭 후퇴한 것이며 공산당도 이번 입각시 이 안을 받아 들였다.
세계굴지의「다소」항공기제작회사를 비롯, 철강·에너지·군수산업·금융기관들의 국유화 조치가 이루어지면 규모로 보아 프랑스 산업체의 50%가 국유화되는 효과를 빚는다.
일부에서는 이 같은 주요산업에 대한 국가의 감독기능을 강화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까 예상하기도 한다.
「피에르·모르와」수상의 2차 내각에 국영회사인 르노자동차의 전 의장「피에르·드레퓌스」가 산업상으로 입각하면서 기간산업 국유화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지 않나 관측되고 있지만 아직 표면화하지 않고 있다.
「드레퓌스」산업상은「드골」대통령 때 국유화된 자동차회사 르노를 맡아 이 회사를 세계자동차업계의 강자로 키운 73세의 노련한 경영전문가로 기업확장과 기업의 활력을 신봉하는 사회주의자이다. 「드레퓌스」산업상은 많은 대기업 경영자들과 친분이 두텁고 기업현실을 잘 아는 만큼 재계에서는 일단 그룹정부와 기업의 다리 역으로 보고 환영하고 있다.
기간산업과 은행의 국유화가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실업자를 구제하는 한편 방만한 기업경영과 독과점악용을 뿌리뽑고 공공의 이익과 국가장래와 국민의 복지에 역행하는 기업을 도려내겠다는 데 목적이 있는 이상 당초의 계획을 수정해서라도 폭을 줄이고 선별해야 한다는 게 많은 기업가들의 주장이다.
국유화공약이 실현된다 해도 현재의 프랑스경제에 큰 변혁이 없을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고 그 동안 프랑스경제는 정부의 투자를 통해 국가의 통제를 받는데 비교적 익숙해왔고 1945년「드골」장군이 국유화작업을 시작한 이래 르노, 아에로스파시알 및 4개 주요 은행들이 잘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직 장관이며 국영업체인 엘프아키텐의 회장인「알랭·샬랑두」같은 이는「미테랑」대통령이 시장법칙을 준수하는 자유경제와 개인의 창의성과 재산의 보호를 신봉하는 이상 독과점의 악폐와 사회부조리의 제거를 위한 국유화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관료조직>
누가 정권을 잡아도 관료조직에 큰 변동이 없는 것이 프랑스 행정체계의 특징이다. 소수 엘리트 코스 출신들이 관료사회의「정상」을 장악하면서 서로 깊이 밀착돼있어 좌우·중도 등 어느 쪽이 정권을 쥐어도 행정체계의 계속성이 유지되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이 지켜진다.
따라서 정권교체의 과도기에도 흔들림이 없다. 관료조직의 정상이 보장되는 엘리트코스는 우선 국립행정학교(ENA)가 꼽힌다. 「지스카르」정부 때의 각료 중 7명이 ENA출신이었고「미테랑」정부의 현 각료가운데도 이 학교 졸업자가 8명이나 된다.
「클로드·셰이송」외상, 「미셀·로카르」경제계획성장관, 「로랑·파비위스」예산장관 등이 그렇다. 「지스카르」전 대통령도 이곳 졸업생이었다.
지난 총선에서 사회당이 당선할 수 있었던 데는 동질의 기술관료 엘리트를 내각에 참여시킨 점이 크게 주효했던 때문으로 꼽는 이도 많다.
이 학교는 2차대전후「드골」장군에 의해 설립된 것으로 테크너크래트의 요람으로 불릴 정도다.
ENA와 함께 손꼽는 엘리트관료 배출기관으로 또 국립과학기술학교가 있다. 기술학교 졸업생은 졸업 후 1년간의 군복무가 의무화돼있으며 많은 졸업생들이 군에 계속 남아 중추를 이루고 있다. 나머지는 과학이나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게되나 결국 관료사회의 정상에 정착하게 마련이다.
현재로선 관료체제내의 젊은 엘리트들이 사회당 정책에 호의적이나 장기적으로는 불투명하다. 「미테랑」정부는 실업자 구제책의 하나로 공공부문에서 21만명의 신규채용을 공약하고 있으며 관료체제의 지방분산을 위해 96개성의 성장을 지방의회가 뽑도록 할 예정이다.
사회당정부는 이 같은 행정체계의 개혁을 위해 관료 엘리트들의 협조를 구하고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군부>
「샤를·에르뉘」국방상은 지난달 28일 장관취임 후 첫 공식나들이로 베르사유의 생시르육군사관학교를 방문했다. 그는 베르사유궁에서 열리고 있는 사관생도 축제에 3군 총사령관「라카즈」장군, 육군참모총장「들로나이」장군과 함께 참석, 밤늦게까지 생도들과 무도회의 분위기를 즐겼다.
이에 앞서「드골」전 대통령의 사위이며 71년부터 5년 동안 육군참모총장을 지낸「알랭·드·브와시에」장군이「미테랑」대통령의 취임 전「지스카르」전 대통령에게 상훈국 총재직 사퇴서를 냈다.
「도·브와시에」장군의 상훈국 총재직은 퇴역장군을 위한 명예직이나 그의 군부에서의 영향력과 경력이 상당했던 만큼 그의 사임은 충격적이었다.
공식적인 사퇴이유가 레지스탕스운동 때의「미테랑」의 행동에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고 그가「드골」장군을 모욕했다는 것이었지만 사회당 정권출현에 대한 불만으로 받아들이는 견해도 있다.
「드·브와시에」장군의 이 같은 정치적 행동은 군내에서도 많은 시비가 일어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두 사례는 뚜렷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사회당정부에서의 군의 입장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군이 우려하는 일이 하나 생겼다. 공산당출신의「샤를·피테르망」운수상이다.
「피테르망」운수상의 입각은 미국·나토 뿐 아니라 프랑스군부도 한 가닥의 우려를 하는 것 같다. 전통적으로 일국의 운수상은 일단 유사시 군의 작전과 무관할 수 없다. 현재 프랑스의 우방과 군부, 정보계통에서 특히 염려하는 것은「프랑스와 서독에서의 1차 작전 배치계획」으로 불리는 국방기밀문서가「피테르망」장관의 손에 들어가 있느냐의 여부다.
유사시의 군 수송계획엔 필연적으로 운수상과 국방상이 밀접히 협조해야하므로 역대 운수상은 기밀문서를 취급해왔고「피테르망」이라고 예외일수 없지만, 그가 공산당 안에서「마르셰」당수 다음의 제2인자라는 점이 문제다.
지난 66년「드골」대통령 때 나토의 군사위원회를 탈피한 프랑스는 사회당정부아래서도 같은 정책을 고수할 것으로 보이며 전통적으로 정치적 중립을 지켜온 군부도 이 자세를 지켜나갈 것으로 보인다.

<재계>
사회당정부와 재계는 아직 이렇다할 마찰이나 공식적인 이견이 없는 채 냉랭한 바람만 일고 있다.
「자크·들로」경제 및 재정상은 지난 27일 방송을 통해 경영자들을 설득, 지원을 요청했으나 경제계는 계속 조심스러운 몸가짐으로 관망하고 있다.
「들로」장관은 이날 방송에서『우리를 도와달라. 우리를 돕지 않는다 해서「미테랑」을 꺾을 수는 없으며 오직 프랑스경제만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고 경제인사들의 도움을 구했다.
재계인사들은 이미 엘리제궁에서「미테랑」대통령과 만나 프랑스의 경제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으나 아직은 우호적이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중과세·석유가 인상·은행국유화계획 등은 가뜩이나 침체된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뿐이라는 주장이다.
경제계인사들은 지난 5월 전국에서 2천개의 기업이 파산신고를 낸 기록을 들추어 사회당정부의 무리한 경제개편이 없도록 경계하고 있다.

<노조>
프랑스의 근로자는 전체의 약 22%가 노조에 가입, 서독의 41, 벨기에 71, 캐나다 26, 덴마크 75, 미국 28, 영국 50, 일본의 34%(이상 75년 통계)에 비해 강세는 아니지만 프랑스 정치·사회·경제분야에서 무시 못할 영향력을 행사하고있다.
노동자단체는 분야별로 노동총동맹(CGT), 민주노동총동맹(CFDT), 기독교노동연맹(CFTC), 노동간부총동맹(CGC), 노동자세력(CGTFO)등이 있으며 1895년에 창립된 CGT는 20만∼25만명의 공산당원을 포용하는 프랑스 최대의 노조로 공산당이 의회 안에서 발언권이 약화됐으면서도 4석의 각료자리를 따낼 수 있었던 것도 CGT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다.
현재 공산당의 입각에 대해「노동자세력」의「앙드레·베르제롱」회장은 반대입장을, CGT의「조르지·세기」회장은 환영의 입장을 보이고있어 공산당의 입각, 사회당의 경제·사회정책에 노조세력이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유동적이다.
정치평론가「레몽·아롱」의 말대로 우파가 좌파에게 패배한 것이 아니고 자살한 셈이라면, 또 유권자들이 국유화정책이나「미테랑」의 경제정책을 지지해서 사회당에 승리를 안겨준 것이 아니라면 이상의 요소들 말고도 사회당의 개혁정책은 어느 한계까지는 제약을 받을 공산이 크다.
따라서 개혁은 문학잡지 르누벨리테레르의 표현대로『부드럽게 조용한 혁명』정도에 그칠 공산이 크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