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선한 창작정신·풍요함 넘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같은 도심 권이지만 나무들이 하늘로 쭉쭉 뻗은 대한문을 들어서면 정신이 맑아진다. 처마의 곡선이 절묘한 몇 채의 옛 건물들, 사람들이 드문드문 산책하는 그 넓은 정원을 내가 독차지한 느낌도 든다.
중앙미술대전의 특징은 초대전·공모전으로 이분화 된 전시방법이라 할 것이다. 원로 중전에서부터 신진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참여의 기회를 주는 동시에 미술사의 맥락을 공시적으로 점검 해볼 수 있는 의의도 지닌다.
현대미술관 입구부터 분수대 주위에 전시된 야외조각 작품들을 위시해서 1백여점의 신작아 진열된 전시장을 돌아보고 느낀 소감은 다양한 소재선택에서 만나는 창작정신의 풍요함이었다. 원로중진들의 초대작들은 더러 소품도 보였지만 자기의 위치를 굳건히 대변해주었다.
그런 질적인 우세에 비해 일반 공모전은 양적으로 팽팽한 젊은 혈기의 대결 정신이 엿보였다. 기본운영 방침에서 이미 밝혔듯 중앙미술대전은 숨어있는 재야작가나 신예의 발굴을 위해 어느 유파나 소재에 구애됨이 없이 폭넓게 받아들이는 등용문 구실을 하고 있다. 관전과는 다른 신선한 이미지를 주는 것도 문호의 개방 때문인 것 같다.
입선작들의 새로운 조형시도와 활성화의 조짐은 동서양화·조각 세 분야에 모두 해당된다. 우선 전시작품 90%가 1백호 내지 2백호 대작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의 야망은 매우 뜨겁고 자기모색과 탐구는 일면 치열해 보였다.
「미술관은 수집가들의 예배당」이란 말이었다.「모리스·램」의 이 잠언을 신예들에게 적용해본다면 2층 전시실을 꽉 메운 극사실주의 계통의 대상을 초월한 조형언어는「오브제」를 파괴하고 재구성시킨 격전장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예술의 궁극목표인 아름다움이 비정함을 동반한 격전장이라고 해서 손상될리는 만무하다. 거기에는 침묵으로 괴어있는 시한폭탄의 메시지가 있다. 늘어진 철조망 안에 방치된 세개의 빈 드럼통이 환기시켜주는 묵비권이야말로 우리의 삶과 겹후 된 물음이다.
테라코타로 구운 땅바닥에 제멋대로 구겨져 있는 바지, 사자의 얼굴이 캔버스 가득히 시간의 마멸을 암시하는가하면 잃어버린 정서를 자연과 사물에 의해 회복시키는 작업도 눈길을 끈다.「육으로 가는 길」의 무심한 억새풀들, 그리고 번지는 색의 대비를 마치 위로하듯 따뜻하게 스미게 한「투영」이 그런 예다.
대한문을 걸어나오면서 나는 재야작가들이 어디에 신임을 묻고 싶어하는지도 이해할 것 같았다. 이번 대전의 수상작들은 객관적 평점의 집계를 획득할 만한 역량이 보였다. 그런 승리는 귀하고 값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