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 2030 농부 스타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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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1786~1855)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젊은이 하는 일이/ 김매기뿐이로다…’. 이 노래를 요즘 청춘의 버전으로 바꿔 부르면 어떨까요. 아마도 김매기 대신 토익, 학자금 대출, 이력서 작성 등이 들어가지 않을까요. 그러나 1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김매기를 하면서 농촌을 지키는 청춘은 건재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약 43만 명의 청춘(20~39세)이 농사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체 청춘 인구(약 1430만 명)의 3%. 비록 미미한 숫자이지만 이들은 우리 농업의 유일하고 소중한 미래입니다. 대다수 청춘이 도시의 편리함을 좇아 경쟁적으로 살아갈 때 흙에서 삶의 기쁨과 행복을 찾는 ‘청춘 농부’들을 만났습니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쯤 달리자 그 마을이 나타났다. 동그랗게 휘어진 산길을 얼마나 돌고 돌았을까. 하늘과 맞닿은 지점에 논밭이 펼쳐졌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과 장곡면. 이 두 면의 전체 인구(6900여 명) 가운데 15%를 넘는 1000여 명이 20~30대 청춘이다. 도시에서라면 취업 공부나 회사 격무에 시달리고 있을 청춘들. 그러나 이 소박한 시골 마을에선 농사일을 천직으로 여기는 ‘청춘 농부’들이 흙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홍성군 일대를 찾은 것은 지난달 27~28일. 청춘 농부들 곁에서 농사일을 거들면서 1박2일을 보냈다. 그들은 “논밭이 일터이니 취직 걱정은 없다”며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웃었다.

 am 06:00~pm 02:00

트랙터 등 농기구는 청춘 농부들의 필수품이다. 왼쪽부터 최준호·서홍덕·주하늬씨. [프리랜서 김성태]

 홍동면에 사는 주하늬(31)씨는 오전 6시쯤 일어나 축사부터 찾았다. 축사 울타리 밖으로 소 30마리가 씩씩 콧김을 내뿜었다. 여물을 주는 하늬씨 목에 ‘블루투스 이어폰’이 걸려 있었다. 최신 아이돌 음악이 쿵쾅쿵쾅 새어 나왔다.

 “농사일하려면 두 손이 자유로워야 하니까 무선으로 연결되는 블루투스 이어폰은 필수 아이템이에요.”

 구릿빛 얼굴의 하늬씨가 소 배설물을 축사 한쪽에 쌓아 올리며 말했다.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냄새 나죠? 이놈이 제겐 큰 재산이에요. 소똥만큼 좋은 비료도 없다니까요.”

 하늬씨는 홍동면에서 태어나 아버지에게서 농사일을 배웠다. 인근 풀무농업기술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대학(경북대)에서도 원예학을 전공했다. 대구에서 대학을 다닐 때, 그도 편리한 도시 생활에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었다. 그러나 흙을 지켜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은 끝내 흔들리지 않았다.

 “마을을 떠나 큰 회사에 취직한 친구들도 많지만 지금은 저를 부러워해요. 도시에선 연봉이 많아도 씀씀이가 크잖아요. 시골에선 적당히 맞춰 살기 때문에 수입이 모자란다는 생각은 안 해요. 농사일에는 출퇴근이나 야근도 따로 없죠. 그저 하늘이 정해 준 대로 일하고 쉬면 정당한 대가가 주어집니다.”

 하늬씨가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2009년이다. 대학 졸업 후 도시 생활을 완전 청산했다. 그는 ‘유기농 재배’를 기초로 조금씩 농사일을 늘려 갔다. 지금은 벼농사 논이 3만9669㎡(약 1만2000평)로 연간 쌀 생산량만 250가마니에 이른다. 게다가 채소를 키우는 하우스가 3동, 깨·콩·호박 등을 재배하는 밭도 3305㎡(약 1000평)다. 연간 농사로 얻는 순이익만 4000만~5000만원. 도시의 신입사원에 비해서도 빠지지 않는 축에 속한다.

 “어릴 때부터 논밭이 제 놀이터였어요. 농부셨던 아버지도 제가 농부가 되길 원하셨죠. 땀 흘려 짓는 농사가 제 천직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시의 빡빡한 삶이 체질에 안 맞기도 하고요.”

 축사 일을 마친 하늬씨가 마당 한쪽의 창고에서 쌀·호박·고추 등을 주섬주섬 꺼냈다. 온라인으로 직거래하는 고객들에게 직접 배송하는 상품들이다. “온라인 직거래는 젊은 농부들의 주요 마케팅 방식”이라며 하늬씨가 상품을 하나씩 포장하며 말했다.

 아내 양윤정(33)씨가 “식사 준비가 됐다”며 방앗간을 찾았다. 윤정씨와는 대학 선후배 사이로 만나 2010년 결혼했다. ‘도시 아가씨’였던 아내도 농사일을 곧잘 거든다. 세 살배기 아들 산들이는 오렌지색 트랙터 주변을 뛰어다녔다. 트랙터에는 도시 청춘의 자동차처럼 하늬씨와 윤정씨 이름을 딴 장식품이 부착돼 있었다. 트랙터 옆면에 ‘HANY’ ‘YG’라고 새긴 검은색 스티커가 도드라졌다.

 오전 10시. 쌈채소와 마늘종·가지조림 등 직접 키운 음식들로 늦은 아침을 먹었다. 하늬씨는 1t 트럭을 타고 다니며 논의 물을 점검했다. 그가 “잠시 쉬자”며 논 옆에 트럭을 세우면서 말을 이었다.

 “농촌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아요. 도시처럼 편의시설이 발달돼 있는 것도 아니고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죠. 그래도 전 농촌을 지킬 생각입니다. 청춘세대 가운데 누군가는 농사일을 해야 해요. 아무도 농사를 짓지 않으면 몇 세대가 흐른 뒤엔 식량 종속국이 될지도 모릅니다. 땀 흘려 일하고 몸에 좋은 먹거리를 기르면서 내 가족의 삶을 일궈 내는 것. 그게 제가 선택한 삶의 행복입니다. 제 아들도 저처럼 농사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pm 02:00~07:00

 해가 산 중턱을 아슬하게 넘어가는 늦은 점심. 인근 장곡면의 최준호(32)씨가 트랙터용 쟁기를 가지러 하늬씨 집에 왔다. 농촌에선 고가의 농기계를 공동으로 구매해 쓰는 일이 흔하다. 오후부터는 준호씨의 ‘농촌 생활’을 따라 나서기로 했다. 준호씨가 “목부터 축이자”며 기자를 불러 세웠다. 구멍가게 앞에서 캔맥주를 마시며 이야기가 이어졌다.

 - 하루 일과가 어때요.

 “해가 뜨면 스트레칭부터 해요. 농사를 짓다 보면 허리에 무리가 가거든요. 아침 먹고 해 질 때까지 계속 농사일이죠, 뭐. 소 여물도 주고 밭에서 고추도 따고….”

 - 도시 생활을 동경한 적은 없나요.

 “7년 전 농사지으러 들어오기 전까진 건축 일을 했어요. 전국 각지를 돌아다녀도 도시에 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어요. 중학교 때 서울에 처음 갔는데 공기가 나빠 두통이 났던 기억이 있어요. 도시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더라고요.”

 해가 기울 무렵 준호씨 집으로 갔다. 논밭 사이로 난 길을 걷는데 메뚜기와 개구리가 튀어 올랐다. 준호씨는 비닐하우스에서 대파를 뽑아 다듬기 시작했다. 읍내 매장에 보낼 파를 다듬으면서 “시골 인심”이라며 기자에게도 몇 뿌리 건넸다. 인근 축사에서 갓 태어난 송아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도시에 살면 좀 더 편할 텐데 굳이 농촌에 남기로 한 이유가 있나요.

 “농업은 천한 직업이 아니에요.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저도 도시 친구들이 돈 잘 버는 것 보면서 부러웠던 적도 있어요. 그런데 야근이다 뭐다 일하는 시간을 따져 보니까 도시 생활은 꼭 노예 같더군요. 저는 1년에 3000만원 남짓 벌지만 시골에선 부족함이 없어요. 시간 여유를 가지면서도 퇴직 걱정이 없죠. 일한 만큼 정당하게 누리는 농촌 생활이 제겐 더 가치 있는 삶입니다.”

 pm 07:00~11:30

 홍동면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홍덕(28)씨를 만났다. 트랙터를 고치고 있는 그의 목에도 블루투스 이어폰이 걸려 있었다. 홍덕씨 역시 고향을 지키는 청춘 농부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젖소목장 일을 도왔고, 그게 직업이 됐다. 최근엔 한우 축사로 개조하느라 일손이 바빠졌다.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젖은 짜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힘들지만 시간에 쫓기진 않는다고 했다.

 “농부에겐 휴일이 따로 없어요. 그래도 마음에 여유는 넘치죠. 도시처럼 서로 짓밟으며 경쟁하지 않으니까요.”

 홍동면과 장곡면 일대의 청춘 농부들은 최근 별도 모임을 조직해 면사무소 옆에 ‘뜰’이라는 호프집을 열었다. 오후 9시를 넘어서자 자전거나 스쿠터, 1t 트럭을 타고 청춘 농부들이 모여들었다. 마을에서 기른 채소와 돼지고기를 안주 삼아 술잔을 부딪혔다. 쌀값이며 채소값 등이 주요 화제였다. 밤늦도록 술잔이 돌았고, 청춘 농부들은 사람 좋은 웃음으로 내내 경쾌했다.

홍성=윤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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