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가에 「그룹 전」러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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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금년 봄 시즌 개막이래 화랑가에는 「그룹전」이 잇따라 열려 관심을 모으고 있다. 시즌이 시작된 3월부터 지금까지 새로 발족‥된 그룹만도 8개. 지난 3일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창립 전을 열고있는 고려서화 회를 비롯, 오류한전·미술동우회·구미회, 제작전. 대구판화 가협회·동악전·서울조각회 등이 창립전을 가져 상반기화단은 「그룹창립 러시」가 일고있는 느낌.
80년말 현재 국내미술 그룹 수는 2백여 개로 1936년 동양화가 김은호 화백 문하생들이 모여 만든 후소회가 현존하는 미술 그룹 중 가장 오래됐다. 원래 그룹들은 이념이나 우애, 작품성격 등을 중심으로 규합되는 것이 통례지만 최근에 형성 된 그룹가운데는 시즌과 함께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후조적 성격을 가진 것도 많았다.
특히 시즌이 되면 여기저기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가 「한번의 만남」을 끝으로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 예도 있었다.
그러나 신기회·낙우회·백양회·목우회·창작미협· 연미회· 앙가주망· 혁·구상전·오리진· 신수회· 청토회 등은 창립전이래 20여회의 회원전을 갖고 꾸준히 활동해온 그룹들이다.
이번에 새로 발족된 그룹들 가운데 서울대 미대조소과 동문들의 모임인 서울조각회, 동국대교육대학원동문의 동악전, 서울교대동문의 오류한전 등은 우애를 중심으로 한 성격의 그룹이다. 구미회는 서양화 사실계열 작가들의 모임이며 제작 전은 서양화 구상계열작가들의 모임으로 작품성격을 중심으로 한 그룹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술 평론가 이귀열씨는 『최근 새로운 그룹들이 많이 창립된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개인전을 갖기가 어려운 작가들이 작품내용과 관계없이 공동으로 작품발표를 위한 장을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그룹활동이 많아지는 것은 화단에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관점에서 일단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종래 그룹가운데 일부는 초기의 활발성과 회원간의 고른 수준 등을 유지하지 못해 내용이 빈약한 간판위주의 활동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이씨는 『그룹 창립 초기에 지닌 젊은 화가들의 열성과 작품수준을 어떻게 계속 유지하느냐가 그룹활동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룹활동은 고른 멤버의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고 실력이 모자란 작가가 그룹의 명성을 자신에 대한 평가로 끌어들이는 식으로 운영된다면 외국에서처럼 그룹 무용론이 대두될 여지도 있다.
다수의 활발한 활동으로 화단 전체에 활기를 넣어줄 수 있는 그룹활동은 아무튼 그 본래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 그룹의 수준을 유지해가면서 새로운 회원을 확보하고 내용을 보완해 가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도록 해야할 것이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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