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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지령 수행 않을 땐 가족 몰살" 위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북괴에 강제 납북됐다가 2백54일만에 귀환한 제2남진호(20t·선장 이성원·59·수협 강원지부 소속)선원 19명은 3일 상오 10시 서울 반공연맹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억류기간 동안 북괴는 갖은 방법으로 북괴에 대한 충성을 강요했으며 귀환 후 공작지령을 수행하지 않으면 가족을 몰살하겠다』고 위협했다고 폭로했다.
귀환어부들은 또 북괴가 송환해준 것은 인도주의를 가장키 위한 것에 불과하며 북괴는 아직도 4백49명의 남한인사들의 생사확인도 거부한 채 억류하고있다고 말했다.
어부들은 북괴가 억지로 5명에게 맹장수술, 3명에게 포경수술을 시키는 선심공세를 폈다고 말했다.
귀환어부들의 기자회견내용은 다음과 같다.

<강제납북 경위>
지난해 8월30일 상오 11시 속초를 떠나 9월1일부터 7일까지 울릉도 동북방 1백60마일 해상에서 어로작업을 하다 선원 용철주씨(62)가 복통을 일으켜 귀향길에 방향탐지기 고장과 풍랑으로 항로설정에 고전하던 중 8일 새벽 3시쯤 거진 동북방 40마일 부근 공해상에서 괴선박 1척을 만났다.
이 선박은 탐조등을 비추며 접근,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 『속초로 가는 어선』이라고 대답했더니 무장군인 5∼6명이 승선, 총을 겨누며 움직이지 말라고 위협하여 납치된 것을 알았다.
그들은 북괴경비정으로 우리 어부들의 눈을 헝겊으로 가리고 갑판에 무릎을 꿇린 채 예인해갔다.

<강제 학습내용>
원산 송도원 초대소에 수용되어 5∼6명의 지도원으로부터 매일 아침8시부터 밤11시까지 사상교육, 북괴의 노래공부와 선전영화를 보았다. 교육내용은 ▲김일성의 주체사상 ▲북괴의 우월성 ▲김일성 식의 통일 방법 등이었다.
매주 2회씩 시험을 치르며 성적이 나쁘면 호된 비판을 받았다.

<송환투쟁>
작년 11월 해왕호 선원들이 귀환직전 북괴에서 기자회견하는 모습을 TV로 보고 우리들은 『강제학습을 못 받겠다. 빨리 보내달라』면서 3일 동안 단식투쟁을 벌였더니 지도원들은 보내 줄테니 교육을 충실히 받으라고 회유했다.

<김정일에 대한 학습>
지도원들은 『김정일이가 김일성의 사상을 잘 알고 실천하며, 인민을 워한 업적이 많다』 면서 금년 4월 김에 대해 40일 동안 집중교육을 시켰다.『김정일은 페니실린 병을 1백m 전방에 놓고 총을 쏘면 백발백중이며 가장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고 교육받았다.

<북괴의 회유책>
지도원들은 김일성이가 『남조선에서 온 사람은 금싸라기같이 아껴야한다』고 말했다면서 귀가 먼 용씨에게 보청기를 주었다가 귀환직전 뺏아갔다.

<재북 가족 상봉>
6·25때 월남한 어부 송태일씨(55)는 어머니와 동생을 초대소에서 지도원의 감시아래 만났다.
송씨의 어머니는 엄동설한인데도 휜 치마저고리에 얇은 내의만 입고있었고 손바닥에는 군살이 박였으며 손등은 얼어 터졌다.
송씨의 동생은 『귀환 후 「혁명사업」을 제대로 안 하면 밀고 내려갈 때 동생에게 칼 맞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대남 모략선전>
팀스피리트 훈련은 북침 준비이며 연습기간 중 진짜 쳐들어올지 모른다고 선전했다.

<지령사항>
통일이 될 때까지 김일성을 위해 투쟁하고 가까운 친지들까지도 「교양」시켜 혁명전사로 육성하라고 지령했다.
어부 박두진씨(25)는 고모부를 만났는데 『장사를 할 때는 「소라」라고 간판을 쓰고 대학가 주변에 하숙집을 차려 대학생들을 포섭하라』는 등의 지령을 받았다.

<강제회견>
귀환직전 강제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배려조」 「통일조」 「제도조」로 나뉘어 10일 동안 각본대로 연습했다. 배려조는 「김일성의 배려」, 제도조는 「대남 비방」, 통일조는 북괴의 「통일방안찬양」 등을 맡았다.
회견 전 양복을 한 벌씩 받았는데 회견 후 바로 뺏어갔다.

<북한의 실상>
핏기 없는 얼굴·광대뼈·남루한 옷차림·어린이들의 이삭줍기 동원 등으로 미루어 그들의 찢어지게 가난한 실상을 알았다.
한 의사는 『쌀이 떨어져 옥수수밖에 없어 도시락을 못 싸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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