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래 "모바일선 대기업도 을" 카카오 제재 시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이 국내 모바일메신저 시장의 92%를 차지하고 있는 카카오의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다. 노 위원장은 “카카오는 국내 모바일메신저 시장에서 3400만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고 이를 통해 사업을 하는 업체가 많다. 그런데 입점업체가 하는 사업에 카카오가 직접 진출해 이용료를 차별하거나 거래조건을 까다롭게 하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플랫폼을 제공하고 수수료를 받던 업체가 사업을 직접 하면 기존 업체가 망한다. 이는 정보기술(IT) 분야에서 기득권을 이용해 지대 추구(rent seeking)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대 추구란 독점적인 지위를 악용해 과도한 수수료 등으로 초과 이익을 챙기는 행위를 말한다.

 실례로 지난 7월 카카오가 모바일 상품권 시장에 직접 뛰어들자 카카오톡에서 모바일 상품권 사업을 하던 SK플래닛이 공정위에 신고를 했다. 이전엔 모바일 상품권 업체들이 커피전문점이나 빵집·편의점 등과 계약을 맺고 모바일 상품권을 만들어 카카오에 공급했다. 그러다 시장이 커지자 카카오가 직접 모바일 상품권 시장에 뛰어들었다. 기존 업체 입장에선 생사의 기로에 선 상황이다. SK플래닛 관계자는 “모바일 상품권 시장을 키운 사업자를 카카오가 몰아낸 것으로 전형적인 갑의 횡포”라고 주장했다.

 신고를 받은 공정위는 현재 이 사건을 조사 중이다. 노 위원장은 “SK플래닛 같은 대기업도 (카카오가 장악한) 모바일 사업으로 오면 ‘을’이 된다. 기득권을 가진 업체가 경쟁을 제한하는 것을 내버려두면 시장이 붕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정위가 조사 중인 사안을 직접 언급하는 일이 드물다는 점을 감안하면 노 위원장의 발언은 수위가 높다. 노 위원장은 “카카오에 대한 처리가 마무리되면 이 분야의 가이드라인이 생길 것”이라고도 했다. 사실상 카카오를 제재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에 대해 카카오 관계자는 “기술이 발전하면 서비스가 결합할 수밖에 없다.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와 편리함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오는 10월 다음커뮤니케이션과의 합병을 앞두고 있는 카카오 입장에선 이번 조사뿐 아니라 공정위의 기업결합 심사라는 ‘큰 산’을 하나 더 넘어야 한다.

 한편 노 위원장은 수입 차 부품가격 문제와 영화산업의 불공정행위 등 다른 현안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노 위원장은 “수입자동차의 수리 비용이 너무 비싸고 불투명해 소비자 불만이 증가하고 있다. 9~10월에 소비자단체와 협력해 수입 차의 부품 가격을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영화업체의 불공정행위에 대해서도 현장 조사를 마무리했고 법 위반이 확인되면 올해 안에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지난 4월 중소협력업체와의 거래에서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혐의로 CJ E&M과 롯데엔터테인먼트 등을 조사했다. 공정위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영화업계의 표준계약서를 만드는 작업을 9월 중 마무리하기로 했다.

세종=김원배 기자, 손해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