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학선 vs 리세광 '도마의 신' 남북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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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 올림픽 남자 도마 금메달리스트 양학선의 기술은 여전히 세계 최고로 꼽힌다. 그러나 그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확신하기 어렵다. 양학선 이전 ‘도마의 신’으로 불렸던 리세광(북한)이 돌아와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도마의 신’ 양학선(22·한국체대)에게도 경쟁자가 있다. 그는 눈에 잘 띄지 않아 마치 그림자 같다. 북한의 체조영웅 리세광(29)이다.

 리세광은 2006 도하 아시안게임과 2008 아시아선수권 도마 금메달리스트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북한 체조 대표선수 나이 조작이 밝혀져 리세광도 출전금지 징계를 받았다. 리세광이 지난해 10월까지 2년 동안 국제대회에 출전하지 못하는 동안 새로운 ‘도마의 신’이 탄생했다. 양학선은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1 세계선수권과 2012 런던 올림픽, 그리고 2013 세계선수권까지 휩쓸었다.

 도마에서 가장 높은 난도인 6.4 기술을 두 개나 구사하는 건 양학선과 리세광 뿐이다. 양학선은 ‘양학선1(도마를 앞으로 짚은 뒤 세 바퀴 비틀기)’과 ‘양학선2(도마를 옆으로 짚은 뒤 세 바퀴 반 비틀기)’를 연기한다. ‘양학선2’는 아직 국제체조연맹(FIG) 기술위원장이 파견된 공식대회에서 시행된 적이 없어 FIG에 공식 등재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4월 코리아컵에서 양학선은 자신이 개발한 이 기술을 완벽하게 수행해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성공하면 FIG에 등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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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세광은 공식 등재된 기술 두 개를 연기한다. ‘드라굴레스쿠 파이크(도마를 앞으로 짚은 뒤 몸을 접어 2바퀴 돌고 반 바퀴 비틀기)’와 ‘리세광(도마를 옆으로 짚은 뒤 몸을 굽혀 2바퀴 돌며 1바퀴 비틀기)’이다. 두 선수 모두 기술을 완벽하게 수행한다면 누가 금메달을 딸 지 알 수 없다.

 양학선에게 리세광은 그림자 같은 라이벌이다. 리세광이 최상의 컨디션으로 기술을 구사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양학선은 “리세광이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뛰는 모습을 본 선생님들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만난 적은 한 번 있다. 지난해 10월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였다. 당시 ‘양학선2’는 성공률 20%에 그칠 만큼 완성도가 떨어졌지만 양학선은 리세광을 이기기 위해 무리해서라도 써볼 계획이었다. 그러나 리세광이 예선에서 심각한 착지 실수로 탈락했다. 양학선이 금메달을 땄지만 리세광과 직접 붙어 이긴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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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학선은 “내가 리세광에게 먼저 인사했는데 아는 척도 안 하더라. 계속 마주치면서 나중에는 친해졌다”며 “내 기술을 보고 ‘공중동작에서 힘이 안 들어가 착지가 다소 미진했다’라고 냉정하게 평가했다”고 전했다. 양학선은 “당시 리세광이 무릎 부상을 호소했다. 나이가 많아 국제대회에서 만나기 쉽지 않을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리세광은 그림자처럼 양학선을 따라왔다. 지난 4월 크로아티아 오시예크에서 열린 FIG 월드컵 시리즈 챌린지컵에서 은메달을 땄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착지 때 매트 밖으로 밀려나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던 드라굴레스쿠 파이크를 완벽하게 수행, 15.675점을 받았다. 양학선이 같은 시기 코리아컵에서 첫 선을 보인 ‘양학선2’의 15.925점과 비슷하다. 2차 시기에 시도한 리세광 기술은 착지가 뒤로 크게 밀려나 14.500점을 받았지만 도움닫기부터 손짚기, 공중동작까지 힘이 넘쳤다.

 한윤수 FIG 기술위원은 “리세광은 상당히 수준 높은 기술을 구사한다. 양학선과 난도 점수는 같지만 공중동작에서 더 많은 회전력이 필요한 기술”이라며 “지난해에는 체력이 달려 실수가 잦았지만, 올해는 체공 높이가 더 올라갔고 감점 요소는 줄어들었다.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 평가했다.

 양학선과 리세광이 제대로 붙는 무대가 인천 아시안게임이다. 양학선의 컨디션은 좋지 않다. 최근 식도 궤양, 허벅지 파열 등으로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양학선은 “‘양학선2’의 기술적인 준비는 끝났다. 다만 훈련량이 부족해 성공률은 50% 정도”라며 “이제야 리세광과 결판을 낼 수 있게 됐다. ‘도마의 신’이 나라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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