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꿈이지만 버리지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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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꿈같은 시간 스무해가 지나 나도 이젠 어엿한 성년이 되었다. 결코 짧지 않은 이 시간 앞에 설 때 새삼 서글픔이 앞서는 까닭은 무엇인지 어릴 때 지녔던 꿈이 깨어졌기 때문일까.
코흘리개 어린아이들은 이 다음에 커서 어른이 되면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벼른다.
음악가도 훌륭하고 관사도 훌륭하고 의사도 훌륭하다. 이런 많은 훌륭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한껏 꿈을 부풀린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너무 동떨어져 나이를 먹으면서 어린 가슴에 하나씩 둘씩 큼직한 못을 박아 나간다.
그래서 평범한 시민이 되고 만다. 인간에겐 어떤 환경이 주어지든지 그 환경을 지탱해나갈 적응력이란 것을 갖고 있다.
그러나 물질과 권력의 노예가 돼버린 사회에 버려졌을 때 인간에겐 노예의 적응력이 길러지게 되는 것이다.
어렸을 적 훌륭한 사람으로 여기고 경외해온 인물들이 한낱 환상이었음을 깨닫고 큰 실망을 느끼기도 한다.
권력층 부정, 몰인정한 의사의 비리, 하늘같이 여겼던 선생님의 비굴한 모습은 사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킬 뿐 아니라 하나의 가치관을 흔들고 마는 것이다.
실망을 간직한 젊은 분노는 시정과 개혁을 위해 과감한 행동을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부딪쳐도부딪쳐도 이미 존재해있는 기성의 관습이라는 벽을 뚫기는커녕 제풀에 기력을 잃고 패배의 쓴잔을 경험한다.
이러한 끊임없는 다람쥐 쳇바퀴식의 일상은 숙명이라고 받아들이기엔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일이다. 끊임없이 쳇바퀴가 돌 때 그래도 우리는 1mm나마 앞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
어린 왕자가 살고 있는 별은 조그만 아주 조그만 별이라서 눈에 보이진 않는다. 그렇지만 어린 왕자가 매일 꽃에 물을 주고 양이 그 꽃을 먹어버리지 않도록 고깔을 씌워줄 때 그 별은 항상 웃음이 가득한 웃는 별이 된다 난 이제 더 이상 나이 먹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꾸자꾸 내 후배들이 자라고 있고 내가 지금 있는 이 공간을 비워주어야 할 때가 온다. 내가 섰던 이 자리를 내 후배가 설 때. 자랑스럽게 여기며 설 수 있도록 이 자리를 다져 두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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