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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진학"이 전부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지난 74년 고교평준화 조치이후 대학진학에서 단연 발군의 성적을 올려 최근 소위 신일유학교로 부상한 사입 S고 3학년 K군의 하루는 아침 6시 기상으로부터 시작된다.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세수를 하고, 입맛없는 식사를 마친 K군이 집을 나서는 시간은 6시40분.
7시20분 학교에 도착해 7시30분부터 1시간동안 아침 방송수업, 8시30분부터 하루 평균 9시간의 정규수업, 그리고 방과후인 저녁6시30분부터 9시까지의 자율학습(사실상 보충수업) 으로 이어진다.

<쉬는시간은 잘때뿐>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한밤중인 10시쯤.
손발을 씻고 야식을 든후 1시간 정도의 복습과 예습을 마치면 벌써 자정. 이젠 나만의 시간, 자는것 뿐이다.
이처럼 한치의 여유도 용납지않는 타이트한 하루 일과는 비단 고3의 경우만은 아니다. 지난해 과외금지조치이후 각학교는 종전의 과외시간을 사실상 학교안으로 끌어들여 각종「보충수업」을 실시하고있고, 또 대부분의 학교가 이를 고1, 2학년생까지 경쟁적으로 확대하고있다.
『모두가 진학을 위한 것이죠. 진학성적이 어떠냐에 따라 학교의 순의가 결정되는것이 우리의 교육현실이니까요. 또 학부모나 학생들도그걸 원해요. 다른 학교는 하는데 왜 우리는 못하느냐 하고 항의하고 나섭니다.』
Y여고 영어교사 김모씨(32)의 말이다.
지난 79년 서울 Y고 문예반이 서울시내 7개 인문고 남녀학생 3백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90%이상이 입시위주의 교육, 변덕스런 입시제도, 교육환경의 미비와 계산적인 교육방침, 예능과목의 형식화로 인한 정서교육의 결핍, 시청각교육 및 실험실습교육의 미흡, 강압위주의 생활지도등을 현 교육체제에 대한 주요한 불만으로 들고있다.
뿐만아니라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는 윤리·도덕·정서교육은 극히 형식적(55%)이며, 「아무런 효과도 없다」(18%)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교육개혁후 중·고교에서는 종래의 입시준비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전인교육의 방향으로 나간다 했지만, 모두 형식적이지요.
저희 학교는 지난해 가을 10년가까이 실시해오던 개교기념 민속무용제·합창대회를 별안간 취소했어요. 이유인즉, 준비행사로 운동장에서 「소란을 피우면」 고3 언니들의 공부에 지장이 있다는 거였읍니다.』 D여고 2년 L모양의 푸념섞인 얘기다.
오늘의 고교교육이 거의 전적으로 입시에만 매달리고 있음은 대부분 고교의 실제 수업시간 배정을 보면 잘 알수 있다. 우선 정규수업시간부터가 영어·수학·국어등 중요 입시과목에 기본이수단위의 2배이상의 시간을 배정하고 있는데 비해, 음악·미술·제2외국어·특별활동등 비입시과목은 기본이수단위를 채우기에 급급한것이 현실.
특히 음악·미술등 정서교육에 해당되는 과목의 3년치를 1년 또는 2년에 몰아서 해치우고 있고 체육의 경우도 고3에는 체력장대비용으로 팔굽혀 펴기·달리기·던지기등을 주로 하며 그마저 체력장이 끝나는 9월이후에는 중요과목에 그 시간을 내춰야 한다.
이런 경향은 공립보다는 사립이, 사립중에서도 문을 연지 얼마 안되는 새 학교일수록 특히 심한데 이들 학교들은 평준화이후 모처럼만에 주어진 명문이 될수 있는 호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거의 학교의 사활을 걸고 총력전을 펴고있다.
따라서 비진학생들은 본의아니게 현실적으로 전혀 소용없는 교육만을 받고 사회로 나오고있는 셈인데, 교육전문가들은 『비단 대학진학자뿐 아니라 고교졸업으로 끝나는 학생도 졸업후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인문고의 종합화를 통해 고교교육을 시급히 정상화시킬 것』을 주장한다.

<원칙엔 누구나 동의>
그러나 일선교육자들은 이같은 의견에 대해 원칙적으로는 동의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인문계고교의 입장으로는 무엇보다도 입시를 가장우선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 서울 성정여고 박준권교장은 『입시라는 엄연한 현실을 앞두고 아무리 좋은 내용의 인간교육을 시켜도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아무도 동의를 보내주지않는것이 우리의 교육현실』이라고 말하면서 『적게는 학생·부모의 바람, 크게는 학교의 명예를 결정짓는 진학성적을 무시하고 한가로이 정서교육만을 내세우다가는 3류학교가 되고 말것』이라고 항변한다.
꼭두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오직 입시경쟁의 험한 관문을 통과하기위한 지식편중의 교육속에서, 마음것 자라나야할 우리 청소년의 정서는 메말라가고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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