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환의 순절|"죽기를 기약하면 살아남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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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생자필사 기사자득생>(구차스레 살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죽게 되고, 죽기를 기약하는 자는 영원한 생을 얻을 것이다.)
살기를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구차스레 목숨을 부지하여 바둥그려 보았자 얼마나 살 것인가? 다행히 천수를 누린대야 기껏 70, 80세, 남는 거이라곤 인생의 막바지에서 오는 자생의 회한과 역사의 준엄한 심판이 따르게 마련이다.
충지공 민영환(l861∼1905년)은 임오군란 때 난민들에게 피살된 선혜청당상 민말호의 맏아들이며, 수령이 보낸 뇌물 보따리를 가족들이 둘러앉아 풀다가 일가가 몰사한 민승호의 조카다.
19세기말 밖으로는 열강의 외침으로 국운이 풍전등화일 때, 민씨 일파는 민비를 등에 업고 자기들 일족의 부귀영화에만 급급했지 나라의 장래는 아랑곳하지 앉았다.
그러나 혼탁한 탁류 속의 한 줄기 청류라고나 할까. 민 충지공은 빈번한 외국여행에서 얻은 폭넓은 견문으로 제반 제도의 개혁을 건의하고, 독립협회를 적극 후원하는 등 국정을 바로 잡아보려 하였으나 현실에 안존하려는 자기 일족인 민씨 일파의 미움을 사서 시종무관장 이라는 한직으로 물러났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의 철폐를 백방으로 항의하다가 형세가 기울어졌음을 보고 유서 3통을 남기고 자결하니 당시 향년이 46세였다. 그의 동포에게 고한 유서 속에 『구차스레 살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기를 기약하는 자는 살아 남을 수 있다』는 명언을 남겨 매국노들이 들끓는 세태지만 애국자도 있다는 경종을 울렸다.
그의 평소 행적에 대해 후세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말이 있지만 그 순국대절은 어느 누구도 감히 나무랄 수 없을 것 같다.
박찬주 <민족문화촉진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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