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판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난민 자살에 첫 배상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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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처의 자살은 후쿠시마(福島)원전 사고로 난민 생활을 한 데 따른 우울증 때문이다."(60대 남편)

"무슨 소리냐, 다들 멀쩡한 데…. 자살은 개인의 정신적 취약성에 기인한 것이다."(도쿄전력)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난민의 자살을 둘러싼 '인과성 공방'에서 재판부는 난민의 손을 들어줬다. 2년 3개월 간의 치열한 공방이었다. 후쿠시마 지법은 26일 2011년 3월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에 따른 피난 생활 중에 자살한 여성(당시 58세)의 가족이 도쿄전력을 상대로 제기한 9100만 엔(약 9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전 사고와 자살의 인과 관계가 인정된다"며 도쿄전력에 4900만 엔(약 4억8000만원)의 배상을 명령했다. 원전 사고와 난민의 자살을 둘러싸고 원전회사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살한 와타나베 하마코(渡?はま子)는 원전으로부터 약 44㎞ 떨어진 가와마타마치(川?町) 야마키야(山木屋)지구에서 태어나 살던 평범한 주부였다. 남편과 집 앞 터에서 무를 재배하고 정원을 가꾸는 게 인생의 낙이었다. 하지만 원전 사고 후 이 지역은 '계획적 피난 구역'으로 지정됐다. 부부는 국가에서 마련한 후쿠시마시의 한 아파트로 피난할 수 밖에 없었다. 익숙치 않은 아파트에서의 난민 생활에 하마코는 불면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1일 '일시(1박2일) 귀가'차 야마키야의 자택에 돌아온 하마코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정원에서 자살했다. 유서는 없었다. 남편인 미키오(幹夫·64)는 "그냥 단순 자살로 끝낸다면 아내가 너무 불쌍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화해를 권고했지만 미키오는 "판결을 통해 도쿄전력의 책임을 명확히 하겠다"며 응하지 않았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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