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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배지 단 귀순 소년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4년 전 앳되고 당돌한 모습으로 만신 휴전선을 넘어 자유의 품에 안겼던 소년병사가 어엿한 대학생으로 변신했다.
개나리·진달래가 활짝 꽃망울을 터뜨린 캠퍼스에서 코르덴점퍼에 청바지 차림으로 친구들과 어울린 옛 소년명사의 모습엔 전혀 어색함이 없다.
서울 K대 경상계열 1학년에 재학중인 귀순소년병사 이석모군(22)에겐 지난 한달 동안의 대학생활이 꿈만 같다.
강원도 철원군 류대포리가 고향인 이군이 고향에 부모와 형제를 남겨둔 채 18세의 소년 병사로 자유의 품에 안긴 것은 지난 77년 l월 6일.
76년 9월 고등중학교 졸업과 함께 군에 입대, 인민군 1군단 소속 박격포 중대의 탄약운반수로 근무하면 이 전사는 작업 중 배고픔을 못 이겨 분대장의 점심 식사를 훔쳐먹고 기합이 두려워 죽음과 영하 31도의 추위를 무릅쓰고 남으로 발길을 돌렸었다.
귀순 후 우리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자유세계의 생활을 익히는 한편 반공강연으로 시간을 보내던 이군은 이듬해 3월 서울 용산 공설 전기과에 입학했다.
월남하기 전 류대포리 인민학교(4년제)와 문암고등중학교(5년제)를 마쳐 고등학교 입학학력을 가졌으나 남과 북의 교과 내용이 전혀 달라 수업에 애를 먹었다.
특히 김일성 유일 사상을 중심으로 주입식교육을 시키는 북한의 교육과 자율학습과 응용을 위주로 하는 이곳의 수업방법이 달라 처음엔 시험 때마다 백지를 내기가 일쑤였다는 것.
이군이 문교부의 주선으로 특별전형을 거쳐 K대에 진학한 것은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과 어울려 더 넓은 경험을 얻고 사업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막상 대학에 진학했지만 영어·한문 등 기초교양과목이 뒤떨어져 수업을 따라가는데 애를 먹었어요.』
그렇다고 공부벌레로만 대학생활을 보낼 수는 없다는 이군은 원호장학생 모임인 전우회에 가입, 서클활동을 하며 친구도 폭넓게 사귀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주일에는 동급생 4명과 함께 S여대 학생4명과 미팅을 가졌는데 어색하고 말문이 자꾸 막혀 진땀을 뺐다며 밝게 웃었다.
이군은 밖에서 볼 때 대학생들의 생활이 너무 자유분방하고 무질서하게만 보이더니 실제 생활을 해보니 모두 나름대로의 건전한 사고와 생활을 이끌어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교 졸업 후부터 서울 신공덕동에 있는 먼 친척집에 기거하고 있는 이군은 자매 결연한 코닥칼라 회사로부터 매월 21만원씩의 용돈을 쓰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했다. <한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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