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때처럼 박근혜에 저항 … 미친 사람 운전 땐 끌어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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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이 다시 ‘투쟁’의 갑옷을 입었다. 투쟁을 주도할 별도의 ‘투쟁위원장’까지 세우기로 했다. 25일 의원총회에선 새누리당이 ‘여야, 유족 3자협의체 제안’을 거부한 데 대해 강경투쟁에 나서기로 당론을 모았다. 박영선(비대위원장) 국민공감혁신위원장은 사과부터 했다. 두 차례의 합의안을 파기하라는 강경파들에 “재협상은 없다. 위원장직을 내놓겠다”던 그는 없었다. 박 위원장은 “조언해 준 선배·동료 의원들께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강경론으로 선회한 박 위원장의 발언 이후 이어진 의총은 ‘투쟁 결의장’이 됐다. “의원 전원이 단식을 하자” “광화문 투쟁에 나서자” “진도에서 국회까지 도보로 투쟁해야 한다” “총사퇴 결의안을 지도부에 제출하자”는 얘기가 쏟아졌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가 유가족을 면담한 뒤 재개된 의총에선 구체적 투쟁방식이 논의됐다. 핵심은 투쟁을 주도할 투쟁위원회의 신설이었다.

 다음은 본지 취재로 재구성한 의원총회의 비공개 발언.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정책위의장(왼쪽)과 박지원 의원이 25일 의원총회가 열리고 있는 국회 예결 위회의장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박영선=“저에 대한 질책을 잘 알고 있다. 제가 부족한 탓이다. 죄송하다. 유족이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만나 3자협의체를 요구할 거다. 여당이 거부하면 강도 높은 대여투쟁을 하기로 원내대표단이 합의했다.”

 지도부의 강경기조를 확인한 의원들은 발언 수위를 높였다.

 ▶한 여성 의원=“히틀러의 나치즘에 저항하듯 (국민이) 박근혜에게 저항하고 있다. (히틀러에게 저항했던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를 거론하며) 그는 ‘미친 사람이 운전하면 끌어내려야 한다’고 했다가 단두대에서 죽었다. 엄중한 현실과 진실 앞에 왜 우리는 무력한가. 우리는 130명이다. 우리가 무력하게 시간을 끌며 유민 아빠(김영오씨)가 죽는 데 일조하고 있지 않나. (원내지도부가) 분리국감 전수조사는 뭐하러 했나.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세월호특별법이다.”

 이후 의원들은 더 강한 대책을 요구했다.

 ▶한 남성 의원=“단원고 학생들처럼 (가라앉는 배 안에서) ‘기다리라’는 말은 거부한다. 우리 당의 무책임이 다 드러났다. 지난 두 번의 합의안을 백지화해야 한다.”

 ▶한 남성 의원=“ 130명이 결의문이라도 내야 한다. 하다 못해 당의 (상징)색을 바꾸고 물 뒤집어쓰는 쪽(새누리당을 지칭하는 말)보다는 잘해야 하지 않나.”

 26일로 예정됐던 국정감사 일정은 처음부터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결연한 투쟁의지를 천명해 지도부에 힘을 보태자는 의견이 이어졌다.

 ▶한 남성 의원=“배가 난파당하게 생겼는데 한가하게 국감 할 때가 아니다.”

 ▶강동원=“지도부에 대한 투쟁은 강하면서 대여투쟁이 약한 점을 반성해야 한다. 지금 (산발적인) 의원들 동조 단식은 의미 없다. 130명이 전원 의원직 사퇴서를 지도부에 제출해 (유리한 협상안을 도출하는 데) 힘을 실어 줘야 한다.”

 광화문 단식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문재인 의원에 대한 비판론도 나왔다.

 ▶남성 중진의원=“문 의원의 단식을 보고 감동을 받고는 있지만 문 의원의 역할은 의원들 중지를 모으는 것이지 단식이 아니다. 단식은 나처럼 허접스러운 의원이 하는 거다.”

 물러난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에서 사무총장을 맡았던 주승용 의원 등은 중립 의견을 냈다. 그러나 곧바로 묵살됐다.

 ▶주승용=“지도부에 힘을 실어야 한다. 박 위원장이 특별법과 전당대회도 이끌어야 하는데 조언을 드리자면 (의원들이) 중립을 지키는 게 지도부가 흔들리는 것에 대응하는 방법이다”

 ▶우원식=“협상 실패는 박 위원장의 유족을 대하는 태도와 발언 때문이다. 협상 내용도 안 알려줘 당 최고위원까지 지낸 내가 주변 사람들의 물음에 대답할 게 하나도 없었다. 원내대표단이 여야 협상 틀에 갇히면서 유족들이 전면 노출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공격당하고 있다. 원내대표단의 실책이다. 투쟁위원장을 새로 내세워 투쟁하고 싸워 나가야 한다.”

 강경한 입장이 이어지자 박 위원장은 “싸우겠다”는 의견으로 정리했다. 재차 “죄송하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장직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뜻을 재차 강조했다.

 ▶박영선=“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국감은 못 하고 내일부턴 싸워야 한다. 비대위원장을 위임하려 해도 당헌·당규상 비대위 구성을 먼저 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게 돼 죄송하다.”

 오전 의총은 이렇게 끝났다. 박범계 원내대변인이 “끝까지 투쟁한다”고 브리핑했다. 오후 8시에 재개된 의총에선 구체적 투쟁론이 논의됐다. 김영록 원내수석부대표는 시작부터 투쟁위원회 신설방안을 설명했다. 개별 의원이 아닌 비대위 차원의 구성안이었다. 26일 김영오씨가 입원한 병원까지 거리투쟁에 이은 27일 토론회가 제안됐다.

 ▶강기정=“투쟁위 구성은 당 대표가 해야지 비대위 산하 위원장을 두는 것은 맞지 않다. 지금 김영오씨 병원까지 걷는 게 강력한 투쟁이 될 수 있겠는가.”

 ▶유승희=“박 위원장이 8·7 합의안에 대한 명백한 사과부터 해야 한다. 갑자기 투쟁 모드 전환이라며 투쟁위원장을 앞세워 김영오씨에게 가는 건 또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다.”

 ▶한 남성 의원=“해가 뜨거울 때 쳐야지. 아니면 우리가 투쟁했는지 국민은 모른다. 130명이 일주일간 청와대 앞에서 단식하자. ”

 아예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투쟁 방안까지 논의됐다.

 ▶우상호=“ 투쟁 계획을 단계적으로 발표해 공유하고 찾는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시민·사회와 결합하는 식으로 넘어가는 게 맞는 단계다.”

 의총 막판엔 견제론이 나왔지만 강경론에 묻혔다.

 ▶백군기=“엉뚱한 소리 같아 말 못 했지만 나는 내일부터 국감을 하려고 나왔다. 의사결정을 너무 쉽게 한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내 주위엔 ‘세월호를 빨리 정리하라’는 목소리가 95%다. 캄캄하다.”

 ▶변재일=“리더십은 팔로십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도부가 일할 수 있게 따라주고 기다리고 승복해야 한다. 고작 ‘유족 동의 없는 특별법 없다’는 게 130명 제1야당의 당론인가. 원칙에 충실하지 못하면 부러진 뒤 다시 서지 못한다. 국민의 공감이 뭔지부터 생각하자. 국민의 평균적 생각과 우리 적극 지지자의 생각이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지상·정종문·이윤석 기자

[사진 뉴시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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