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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톡 쏘는 시원한 맛 술꾼들에 대인기|군산시 영화동의「아귀찜마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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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군산=김수길 기자】생선 중에 흉측하게 생기기로는「아귀」(안강)를 따를게 없다.
우리나라 서-남해에서 두루 잡히는 아귀는 길이 60cm-1m쯤의 비교적 큰 생선. 큰놈은 몸무게가 20kg이 넘는다.
아래턱은 위턱보다 길고 주둥이가 몸 전체의 반을 차지해 아귀란 이름이 붙었고 그 큰 입으로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삼켜「물통 배기」란 별명을 가진「바다돼지」다.
몰골에 비하면 고기 맛은 빌미가 있어 한 지역의 맛을 대표하게끔 되었으니 사람이나 축생이나 생김새만 갖고 따질 일은 아닌 것 같다.
온갖 양념에 된장을 풀어 푹 찐 게「아귀찜」. 사람들은 방언의「아귀찜」이라 흔히 부르고 어두에「군산」지명이 붙게 되면「군산아귀찜」으로 칭해야 제격이다.
군산의 토박이 맛이 바로「아귀찜」이고 원조 격인 경산 옥이 있는 영화 동 일대는 아귀찜동네로 소문나 있다.
아귀요리는 마산·부산도 손꼽히지만 콩나물을 많이 넣고 국물이 흥건한「아귀매운탕」 이 유명하고 찜의 진미는 조리방법이 독특한 군산에서 찾아야 한다.
『비록 몰골은 흉하게 생겼어도 살에 탄력이 있어 맛 속은 그 만이에요.』
군산의 아귀찜과 동의어로 불리는 경산 옥 주방장 김양식씨(44). 아귀 다루기만 24년째다. 해방될 때까지만 해도 생기기도 못생겼고 별맛이 없다고 갖다 버리던 아귀의 조리방법을 개발. 군산의 명물로까지 만든 장본인이다.
19세 때 고행 김제를 떠난 김씨는 군산의 어느 횟집에 주방보조원으로 취직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귀는 백반 상에 반찬구색으로나 놓였을 뿐 다른 요리접시엔 근처도 못 갈 만큼 괄시를 받고 있었다.
『육질이 쫄깃쫄깃한 게 냄새를 맡으면 톡 쏘는 매캐한 맛이 있고 먹고 나면 시원해요.』
김씨가 아귀의 이 독특한 맛을 살려 주방보조원 1년만에 내놓은 아귀찜은 하루 아침에 미식가들의 인기 품이 되었다.
그 뒤로 군산아귀찜은 주독을 푸는 해장 감으로, 청주의 좋은 안주 감으로 서울·부산·마산 등지로 번졌고 지금도 영화 동 엔 순전히 아귀찜만 하는 전문 집이 20여 곳이나 성업 중.
먼저 멸치 국물을 멀겋게 뽑아 고춧가루와 된장을 떫지 않게 풀어 끓인다. 이 국물에 아귀를 넣고 마늘·미나리를 얹은 뒤 또 끓여 양념 맛이 살 속에 배게 한다. 비린내를 없애려면 참기름을 친다.
흔히 사용하는 생강을 넣으면 아귀는 이상스레 살이 물러져 버리고 만다.
『이게 무슨 큰 비결이라고 비밀로 하겠어요. 물어 오는 분들한테 그대로 알려 드리지만 제가 끓인 맛이 안 난다고 하더군요.』
할머니의 보쌈김치 맛이 그렇듯 역시 오랜「손끝」의 경륜이 맛을 좌우하는 것 같다며 너털웃음이다.
김씨가 지금 쓰고 있는 도마의 나이가 20년. 나무에 독기가 있으면 음식 맛을 죽이는 법이라 왜 송 아닌 진짜 한 송 도마를 그의 나이 24살 때 구해 지금껏 쓰고 있단다.
어두일미란 말이 있지만 워낙 생긴 게 흉측해서 처음 먹는 사람들은 얼굴을 찡그리지만 한번 맛을 들이면 특히 머리와 지느러미 맛이 기가 막힌다고 한다.
남의 밑에서 19년을 있다가 74년에 독립, 경산 옥을 차린 금씨는 지금도 주방장을 두지 않고 손수 아귀 배를 가른다. 굳이 먼길 찾아왔다가 김씨 얼굴이 안보이면 발길을 돌리는 단골손님들의 푸근한 정 때문이란다.
천대받던 아귀가 요즘은 한 마리에 3만원. 배가 재대로 들어오지 앉을 땐 5만원까지 치솟는다. 남자 둘이서 하룻밤 술안주로는 한 접시면 족하다. 값은 8천∼1만원.
『밑지는 장사라면 말이 안되고, 종업원 월급 주고 세금 내고 재료값 빼고 살만 합니다.』한 접시에 1만원이면 누구나 멱을 수 있는 대중음식은 아니다. 중소도시에서 손님이 바글바글 끓을 만큼 많은 것도 아니고 해서 영화 동 아귀찜 집은 지난해부터 대도시 이민이 많아졌다고 한다.『이윤이 높지 않으니까 문닫는 짐도 많아졌어요. 또 일단 이름이 나니까 대부분 대도시로 솜씨 팔 이를 나가고요.』
김씨에게도 얼마 전 서울 명동에 터를 잡아 주고 자본일체를 댈 테니 함께 동업하자는 사람도 있었지만 일단「맛」이 제바닥을 떠나면 그 맛이 안 나는 법이라 한마디로 거절했단다.『저야 맛내는 보람에 고생인줄 모르고 나이 먹었지만 아이들만큼은 저 하고 싶은 공부 실컷 시킬 랍니다.』
쉬는 날이면 책방을 들며 생선요리 책을 수집해 새로운 맛을 연구해 보지만 대부분이 외국서적이라 어학실력이 짧아 답답하다는 그는『글 많이 배운 분들이 요리 책 번역은 안 하느냐』고 묻는다.
못생긴 아귀를 다루기 때문에 은근히 걱정을 했으나 두 아들과 외동딸이 모두 엄마 쪽을 닮아 예쁘게 잘 생긴데다 튼튼히 자라 대견스럽다고-. 금년엔 나란히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입학, 모처럼 온 식구가 자축연을 베풀었다고 자랑이다.
모범업소로서 많은 사람들에 솜씨를 익혀 군산의 맛을 일으킨 공로로 김씨가 방은 표창장만 10여 개.『군산에서 배운 솜씨를 다른데 가서 빌려주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소문만 듣고「군산아귀찜」간판을 걸어 놓는 상술은 못마땅하다』는 김씨는 자칫 진짜아귀찜의 맛이 잘못 알려질까 걱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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