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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밭 파고드는 「세치혀」의 곡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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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13일부터 시작된 선거합동연설회는 주말을 기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수많은 말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14일인 토요일에는 비가 내렸으나 말의 성찬은 계속되었고 유권자들은 그냥 비를 맞거나 우산을 받쳐들고 오랜만의 정치연설에 귀를 기울였다.
제한된 시간에 하고 싶은 말, 듣고싶은 말이 얼마나 전달될지는 더 두고 볼일. 아뭏든 선량 후보들은 자기선전, 소속정당 PR에서부터 구체제비판, 정부와 집권당 비난, 야당을 자임하는 정당과 후보들의 선명성 시비, 갖가지 공약에 이르기까지 많은 말들을 토해냈다.
개중에는 정문의 일침 같은 것이나 기발한「아이디어」나 재치가 넘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어처구니없이 실소를 자아내는 말들도 있다.
후보들의 말을 유형별로 추려 연설의 흐름을 알아본다.

<인상깊은 신인들 자기소개>
○…후보 중에 점치 신인이 많다보니 유권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려는 자기소개부분이 대체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자신의 이력과 배경, 정치 투신동기에서부터 『안 뽑아주면 자살하겠다』는 사뭇 협박조의 애소도 있다.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해 우등생이었고 「리더십」이 있어서 반장도 지냈으며, 중앙대학재학 때는 8명의 총 학생회장후보 중 l등으로 당선됐다. (서청원·민한·동작)
△15년 전「비 내리는 호남선」열차를 타고「무등산 수박」으로 유명한 호남에서 올라왔다. 반공아줌마로 통하는 나를 여러분의 딸·며느리로 생각해달라. (정정대· 민권· 동작) △미국의 명배우 「레이건」이 대통령이 됐듯시 나도 정치 무대에 보내주면 시시한 조연은 하지 않겠다. (강신영·국민·마포-용산)
△내가 경영하는 유석국민학교의 이름만 봐도 내가 야당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고유석 조병옥 박사를 얼마나 존경했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박인출·민권·마포-용산)
△여당의 독주를 막으려 여당에 들어왔다. 이것을 두고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한다. TBC가 없어져 잡을「마이크」가 없으니 의정단상에서「마이크」를 잡도록 해달라. (봉두완·민정·마포-용산)
△기호가 11번인데 첫번째 합동연설도 11번째로 하게됐다. 우리집안에서 선친(고 조병옥 박사)이 정·부통령선거 각l회, 국회의원선거 4회, 윤형 형님의 국회의원선거 4회까지 합쳐 이번이 11번째 선거다. (조순형·무·성북)
△나는 여야를 초월한 정치인이며 진념의 정치인이지 변절자는 아니다. (한병송·민정· 대구 중-서)
△10대 국회 때 떨어진 뒤 살길이 막연해 어린아이들과 함께 연탄불을 피워놓고 자살하려 했다. 이번에 떨어지면 정말 자살할지 모르니 부조 돈3천원 가지고 오는 마음으로 나를 찍어달라. (조종익·민한·여주-이천-용인)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운다는 노래가 있는데 이 사람은 여러분에게 표를 달라고 울고있다. (유한열·민한·금산-대덕-연기)
△25년간 수양하고 찾아온 현대판 강태공이다. 1천5백 만원을 지불하고 행하는 비싼 연설이니 잘 들어달라. (최병찬·무·관악)
△나를 보고 변절했다고 하는데 고 박대통령이 돼지 키우고 있는 나를 불러갔는데 뭐가 변절이냐. (조홍내·무·의령-함안-합천)
△국회의원 1년에 자가용도 없다. 돈 없는 게 뭐 나쁘냐. (홍성우·민정·도봉)
△10년 가까운 세월을 무악재 너비 서대문대학에서 옥고를 치렀다. 꽃이 피려고 하니 꽃 시샘 바람이 세기도 하다. (윤길중·민정·서대문)
△국민에게 언약한 것은 책임지고 조국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칠 6백만 불의 사나이 고영우를 국회로 보내달라. (고영우·국민·서대문)
○…연설회에서 비판적인 발언은 주로 민한·국민·민권당 후보사이의 상호비판이 대부분이고 정부나 민정당에 대한 화살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러나 종로-중구의 조선출(민권)후보같이 무척 독한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고, 구체제에 대한 비판은 대체로 혹독했다.

<「들러리정당공해」론 펼쳐>
△지금 이 나라는 뭣인가 잘못 굴러가고 있다. (김철·사회·동작)
△중구에 연락사무소를 하나 두려고 했더니 사업을 하는 친구가 압력을 무서워해 사무실을 빌려줄 수 없다고 하더라. (조선출)
△이른바 개혁주도세력이 야당의 건전한 비판도 받지 않고 개혁을 강행했기 때문에 더러 부작용을 낳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학입시제도를 바꾼 것이다. (김재영·민한·마포-용산)
△들러리 정당공해와 일부예편자들의 취업소가 되는 국영기업체의 인사공해를 막아야 한다. 정치적 보복의 성격이 짙은 정치활동규제는 이번 선거가 끝난 뒤 하루 속히 해제되어야한다. (김판술·민한·종로-중구)
△인재가 적은 나라에서 인재를 키워야 하는데 이번에 쇄신법으로 또 묶었다. 단합·동참이란 말을 자주 쓰는데 그러려면 다 풀어줘야 한다. (이만섭·국민·대구중·서)
△물위의 거품처럼 떠오르다 한 사람만 죽으면 사라지는 정당을 봐왔다.
이번 선거는 관권정당 대 민권정당의 대결이다. (현한조·민권·대구중·서)
△대학 입시장이 증권시장·복권 추첨장같은 난리를 겪었는데도 누구하나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것은 바로 정부가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손세일·민한·서대문)
△구 공화당이 갖고 있던 당사·집기 등을 양도소득세 한푼 안내고 민정당이 가져갔다. 1백5억 원의 구 공화당 재산은 국민복리 사업에 써야한다. (고영우·국민·서대문)
△전에 국회의장 비서관을 지냈는데 그때의 국회의장은 의장이 아니라 「로보트」였다. 고위층의 지령을 받은 몇몇 행동대원이 마음대로 의장에게 지시를 했다. (마의웅·민사· 종로-중구)
△고 박대통령이 비대한 비서실·경호실의 포로가 되어 입에 쓴 얘기는 전달되지 않고 입에 단 얘기만 전달됐다. (이종찬·민정·종로-중구)
△이대통령과 박대통령의 끝이 좋지 않았던 것은 여당이 일사천리와 만장일치만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달리는 「엔진」에 제동장치가 없으면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흉기가 된다. (정상조·민한·안동-의성)

<'야당자처 후보 많다' 개탄>
○…민정당에 대한 비판이 켕겨서인지, 야당성향표를 의식해서인지 이번 선거연설회에서는 야당을 자처하는 정당들의 상호 비난과 공격이 무성했다.
국민·민권당 후보들은 민한당이『허울만의 야당』이라고 주장했고, 민한당 후보는『준여당』『들러리 야당』『야담 교란분자』란 말로 다른 정당후보를 몰아쳤다.
△우리 나라에는 여여당·준여당·야여당·야야당이 있는데 민권당이야말로 야야당이다. (정동환·민권·강동)
△여러당이 많지만 많은 선배들의 전통을 받은 민한당이 원내 제1당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평화적 정권교체는 민한당이 정권을 잡는 것이다. (손세일·민한·서대문)
△지금은 비록 약하지만 민한당이 강해질 것을 두려워해 무소속·군소정당까지 끌어들였다. (김태수·민한·도봉)
△솔직히 말해 나도 안민당으로 나왔지만 요새 정당 쳐놓고 신통하게 보이는 정당이 있는가. (이영희·안민·관악)
△가장 더럽고 곤욕스러운 것은 모든 후보가 야당, 야당하고 부르짖는 판국이 됐다는 사실이다. (임재정·민한·광주 동-북)
△국회에서 본회의장도 아닌 제3, 제4별관에서 악법이나 만들고 사람들을 줘 패는 일이나 해 지금은 수도원쯤 갔어야 할 사람이 야당이라며 선거에 나서고 있는데 내가 원내에 들어가면 그런 사람들 손 좀 보겠다. (서청원)
△정권을 뺏기고 당사를 뺏기고 사람마저 뺏긴 국민당이 무슨 여당이냐. 관권도 없고 돈도 없고 의리와 투쟁만 남은 국민당이 진짜 야당이다. (현기순·국민·종로-중구)
△모 당이 선명야당이니 전통야당이니 하는데 그 사람들의 과거행적을 보자. 나야말로 기질적으로 야당으로 태어났다. (원동진·신정·마포-용산)
△민한당은 전 중앙정보부간부, 통대의원, 공화당사람에게도 공천을 주어 가짜 야당의 본심을 드러냈다. (오류근·무·관악)
△강동구가 서울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이 많은 것은 주민들이 야당만 좋아했던 탓이다. (정남·민정·강동)

<서울사람 안되겠다고 약속>
○…너무 실현성이 없는 공약도 선거 비리라는 얘기가 있어서인지 민정당 후보들은 비교적 사업공약을 하지 않는 게 특징. 다른 정당후보들도 구체적인 사업공약보다는 추상적인 정치공약에 치중했다. 그러나 개중에 종로-중구의 조경철(신정)후보 같은 이는 여성지위향상, 콩나물교실 해소 등 수심가지 공약을 제시.
△당선되면 불법·부조리·부패·불안·불평·부정·불황 등「7부」을 추방하겠다. (조경철)
△l인 장기집권을 막지 못하고 올바른 소리를 전달치 못하면 즉시 정계에서 물러날 것을 확약한다. (이종찬)
△나는 현대병원장인데 시간이 허락하는 한 구내서민에게 무료진료를 해주겠다. (우창규·무 동작)
△국회에 보내주면 불우돕기위원회와 서민생활대책위원회를 만들고 국회를 l년3백65일 계속 열도록 하겠다. (허만기·민한·성북)
△선거만 끝나면 곧바로 서울로가 유권자위에 군림했던 것이 이제까지의 국회의원상이었지만 나는 국회의원이 돼도 결단코 서울사람이 되지 않겠다. (박용진·기민·안동-의성)
△아무리 무허가주택이라도 안심할 수 없는 세상이라면 아무리 복지사회를 떠들어도 소용없다. 상수도난은 꼭 해결하겠다. (임철순·민정·관악)
△돈 벌어서 친정간다는 말은 말짱 거짓말이다. 평소에 노력하지 않고 당선시켜주면 뭘하겠다는 사람은 믿지 말아야 한다. (김한강·무·마포-용산)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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