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정치토론은 자유 면학 해치는 데모 병폐 근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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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규호 문교부장관은 12일 고려대방문을 시작으로 13일 연세대를 방문하는 등 대학생들과 의 직접 대화의 길에 나섰다. 장관과 학생간의 오랜만의 대화라는 점에서 대화장은 초만원을 이룬 채 술렁임과 열기로 가득 찼다. 이 장관의 고대생과의 대화는 이날 하오 2시 2백석규모의 중앙도서관4층 소회의실에 김상협 총장과 10여명의 교수, 5백여명의 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있었다. 이 장관은 『현대적 상황과 우리의 가치관』이란 주제로 약1시간에 걸친 강의를 한데 이어 학생들로부터 질문공세를 받고 답변했다.
「장관과의 대화」를 주선한 학도호국단간부들은 이날 학생들의 예상질문을 미리 받으려했으나 학생들로부터 심한 야유를 받고 포기, 이 장관은 학생들의 자유질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학생=호랑이 굴에 찾아오신 용기에 경탄합니다. (일동폭소)
장관께서는 대학의 질을 보장하고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셨듯이 학생들은 학도호국단간부가 등단했을 때 야유(「우-우-」하고『내려가라』고 고함쳤음)를 할 정도로 이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있습니다.(폭소) 학생활동의 자율성이 보장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관=지금 학생의 질문에 대해 많은 학생들이 환호를 보내는 것으로 보아 대부분의 학생을 대변한 것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민주주의사회에서는 대학생이 장차 정치적 영역뿐 아니라 모든 방면에 진출할 것인데 정치문체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그런 점에서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성적 토론에 그쳐야함에도 지난「6·3사태」때 느낀 경험에 비추어보면 상경대학생들은 한일관계정상화에 긍정적이었고 정법대생들은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받은 굴욕을 의식해서인지 반대했었지만 결국 「데모」로 번지자 상경대학생들도 참가하는 결과를 빚었습니다.
자유롭고 이성적인 토론과 대화를 할 수 있는 교권확립과 분위기조성은 만성적 「데모」요인이 없어져야 가능합니다.
정부는 종래와 같은 악순환으로 공부를 못하게 되는 병폐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것이지 자유로운 토론이나 비판을 막자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새로 입학한 1학년생들은 졸업정원제에 따른 중도탈락의 두려움 속에 떨고 있습니다. 졸업 정원제가 학생들을 공부하게 하기 위한 순수한 의도인지, 아니면 다른 정치적인 복선이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폭소)
장관=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대학에 들어가는 문은 좁은 반면 나오기는 쉬웠습니다. 그런데 문교부통계에 따르면 어느 대학이나 졸업할 때까지는 평균26%, 가장 적은 의예과도 7%정도의 탈락이 있었습니다.
졸업정원제는 학생들을 도중 탈락시키자는 것이 아니라 많은 학생들을 받아들여 질 좋은 학사를 확보하자는 것이며, 대학에 들어온 이상 열심히 공부하도록 하자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 제도의 운용은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예컨데 과별이 아니라 단과대학별 정원운용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그것입니다. 「탈락」이라는 말보다 「수료」라는 말이 적당할 것입니다. (학생들 폭소·김 총장 미소·이 장관도 잠시 말을 멈추고 미소)
학생=청운의 꿈을 안고 명문 고대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들어와 보니 강의실은 앉을 자리조차 없어 마치 초·중·고교 때 우리가 시달려온 콩나물교실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수준의 고려대학」은 꿈이 아닌가 싶습니다.(일동 폭소)
장관=초·중·고교의 교실난에 대해서는 장관인내가 아무리 공격을 받아도 할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학의 경우는 사정이 다릅니다. 세계의 유명한 대학에서는 저명한 교수의 강의시간에는 언제나 콩나물교실을 이루게 마련입니다.(일동 폭소) 좀 더 지내보면 고대생이라는 참 맛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학생=나라가 잘 돼야 대학도 발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치상황이 복잡하게 전개되는데 어떻게 공부에 열중할 수 있겠습니까.
장관=(약1∼2분 동안 생각하던 끝에)여기 교수들이 계시지만 나는 「10·26」이전이나 이후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 장관을 그만두더라도 소신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고도의 책임감과 훈련으로 가다듬어진 서구산업사회와 발전도상국과는 사정이 다릅니다.
개인적인 체험담이긴 하지만 나의 할아버지가 일제에 협력을 안 한다고 일본경찰은 아편을 찾는다는 구실을 붙여 구두를 신은 채 방안에까지 들어왔습니다. 이때 할아버지는 『이 꼴을 언제나 안볼 수 있을까』하고 혼자 말을 하시는걸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일본경찰이 『당신이 안볼 권리가 있소?』라고 윽박지르자 할아버지는 『없으니까 가만있네』라고 대답하시던 것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가건설은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현대국가는 워낙 복잡한 기능을 갖고있고 그 기능을 발휘하려면 모든 직종의 사람이 협력해야할 것입니다.
학생=대학의 질을 높여야한다고 하셨는데 정부는 수많은 교수를 자문위원으로 위촉, 가르치는 시간을 빼앗고 있습니다. 교수를 빼가지 마십시오.
장관=현대의 정부는 비단 교수뿐 아니라 일반산업체나 전문지식인들의 자문 없이 정책을 결정하기란 어렵습니다.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교수들이 결코 강제로 정부에 나와야되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세계적 정치추세는 크게 2가지로 나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있고, 사회주의에도 서구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있으며 민주주의에도 민주를 표방한「파시즘」까지 있습니다. 차라리 우리도 서구적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장관=학생의 질문을 들으니 정치학을 전공하고있는 것 같은데 우리 나라에도 민사당이 있으니 앞으로 거기 가입해 활동하면 좋을 것 같구먼.(일동폭소) 독일 사민당의 「자본주의에는 동굴과 같은 어두운 면이 있고 그 어둠이 짙어지면 파멸이 온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발전을 추구하려면 이에 따르는 모순과 부조리를 극복해야 합니다. <전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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