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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공화국에 바란다|『정치는 군림 아닌 봉사』란 전대통령의 이념 재음미를|이호 입법회의의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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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해방이후 수많은 변혁을 겪었지만 이번만큼 새 공화국을 맞는 감회가 깊은 적은 없었습니다. 「10·26」 이후의 혼란기를 무사히 넘기고 제5공화국이 정식 출범하니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제12대 대통령이 취임하는 3일, 이호 입법회의의장은 『우리에게 주어진 안보상황은 선택의 폭울 좁히는 것이 사실이며 우리가 택한 이 길이야말로 최선의 길이고 생존과 직결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고 했다.
남북이 대치상태에 있고 저속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민생을 안정시켜야하는 시급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10·26」 이후 우리가 한때 겪었던 국가적 위기가 또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했다.
치안국장으로 「6·25」 직전의 혼란기를 겪었고 허정과도 정부의 내무장관으로서 「4·19」 직후의 혼란을 수습해야 했던 이의장은 사회 정치안정이 국기의 요체임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느끼는 것 같다.
-새 지도자에 대한 기대랄까 희망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나는 전두환 대통령을 과거에 깊이 안바가 없습니다. 「10·26」 이후 비로소 알게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1인 장기집권을 배격하고 평화적 정권교체의 기틀 위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겠다는 약속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말은 그후 여러차례 전대통령 자신의 입을 통해 강조돼 왔지만 나는 반드시 그분에 의해 그 약속이 지켜질 것으로 믿고 또 기대하고 있습니다.』
-요즘 새 시대·새 정치라는 말이 흔히 사용되고 있는데 의장께서 생각하시는 새 정치는 어떤것이겠습니까.
『세상이 바뀔 때마다 항상 새 시대·새 정치라는 말이 나돌았지요. 그러나 과거 우리가 듣던 새 정치와 요즘 나도는 새 정치와는 구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전대통령께서 새 정치를 한마디로 「정치의 근대화」라고 표현하고 그 내용에 헌법준수와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담은 것은 과거에 누구도 갖지 않았던 정치관이라고 봅니다.
정치인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고 정치라는 단어에 국민이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할 때 그것이 바로 새 정치의 구현이 아닌가 봅니다. 정치라는 단어가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회의와 냉소의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전대통령의 「구정치」에 대한 지적이 있었지요. 정치인도 우리국민의 한사람이고 바로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인데 왜 그들에 대한 인식이 거기에까지밖에 미치지 못했나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한번 반성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과거 정치인이 모두 그랬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정치인이 정치를 목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개인의 영달이나 치부의 수단으로 악용하려 들었던 때문은 아닐까요?
『그런 면도 전혀 부정할 수만은 없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비단 정치인에게만 있는 책임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봅니다.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의식 때문에 그러한 정치풍토를 국민 스스로 조장 내지는 고무했다는 책임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국민들은 대체로 남을 끌어내리기는 좋아하면서 지도자를 아끼고 존경하는 마음에는 퍽 인색했다고 여겨집니다.』
-전대통령이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강조했는데 제5공화국이 서민생활을 위해 해야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상식적인 얘기지만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역시 의·식·주라고 하겠습니다. 그 동안 경제성장 덕분에 먹는 것과 입는 것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됐지만 아직도 주택문제는 심각합니다. 특히 서민주택의 경우는 정부가 보다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며 주택정책 자체가 재고되어야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부는 서민생활의 구석구석을 살펴야합니다. 점치가 군림하는 것이 아니고 봉사하는 것이란 전대통령의 정치이념을 모든 공직자들이 새삼 음미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정책이 아니라 서민위주의 봉사행정이 요청됩니다.』
이의장은 내무장관 두 번, 법무장관 두 번, 주일대사, 적십자사총재 등 굵직한 공직을 맡았지만 공직관은 뚜렷하다.
-그 동안 입법회의를 4개월여 이끌어 오셨는데 특별히 느끼신 소감이라도….
『입법회의 운영이 모두 다 잘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짧은 시간에 그 많은 법률안들을 능률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던 사실에 대해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일부 국민들은 입법회의가 과거 유신 때의 비상 국무회의와 같이 무조건 일사천리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있는 것도 잘 압니다만 입법회의 최고책임자로서 정말 그때와는 판이하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역대정권에서 각료 등 요직을 두루 거쳐 세간에서는 「관운이 좋은 분」으로 통하고 있는데 혹시 무슨 비결이라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비결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말이 있듯이 만사에 성심성의껏 임하다보면 자신이 기대하지 못했던 결과를 얻는 수가 있는 것 같아요. 비결과 요령은 언젠가는 그 한계가 드러나게 된다고 봅니다.』
(요즘도 새벽 6시면 일어나서 가벼운 산책과 운동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의장. 그래서 그런지 고희를 불과 3년 남짓 앞두고 있지만 항상 불그스름한 얼굴색을 잃지 않고 있다. 「방콕」 감기가 유행하고 있지만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지냈다고 자랑한다.)
-지금도 대한적십자사총재·헌법위원회위원장·입법회의의장 등 큼직한 공직을 세개나 겸직하고 계신데 하루시간을 어떻게 쪼개 쓰시는지요.
『입법회의에 아침 일찍 일정이 있는 날은 의사당으로 직행하지만 대개는 적십자사로 출근을 합니다. 매일 평균 두 차례씩 여의도와 남산(적십자사)을 오가게 됩니다. 헌법위원회는 매주 한번씩 위원회가 있으니까 그때마다 나가지요.』
너무 시간에 쫓겨 책 읽을 짬이 없는 것이 무엇보다도 안타깝다는 것이 이의장의 불만이다. 정치에는 원래 초연한 입장이기 때문에 청탁을(?) 하러 오는 사람이 없어 바쁜중에서나마 다행이라는 얘기다. 민정당이 11대 국회에서의 국회의장 대목으로 지역구(경북영천) 출마를 건의했지만 끝내 고사하고 말았다.
권정달 민정당사무총장이 삼고초려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치에 뜻이 없다기 보다는 욕심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될 것 같다.
-그간 입법회의를 운영하신 경험으로 보아 앞으로 11대 국회의 바람직한 운영방향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정치가 정도를 이탈하면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하나의 야합이고 거래라고 봅니다. 다수당의 일방적 독주도 문제지만 소수당의 무조건 반대도 지양되어야 할 폐습이지요. 여당은 아량과 관용을 가지고 야당을 대해야하고 야당은 건전한 비판과 대안 있는 반대를 해야됩니다.
또다시 과거의 흑백논리나 극한 대립이 재현될 때 국회는 국민들의 지탄을 받을 것은 물론이요,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할 것입니다. 상호이해와 존중으로 참다운 대화정치를 정립시켜 나갈 때 국회는 보다 강해지고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고전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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