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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잡기를 금지하는 미국 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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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성탁
사회부문 차장

몇 해 전 연수를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머물며 공립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낸 적이 있다. LA에 유독 한인이 많아 이 학교는 전교생의 30%가 한국인이었다. 어느 날 일부 학생이 운동장에서 술래잡기를 하다 작은 몸싸움을 벌였다. 한국이라면 넘길 법도 한데 교장은 부모를 모두 학교로 부르는 등 심각하게 대응했다. 알고 보니 이곳에선 술래잡기가 금지돼 있었다. 다른 사람을 쫓아가 터치하면 그 사람이 술래가 돼 다시 쫓는 놀이가 공격적이라는 이유였다. 이 학교 1학년생은 ‘f-word’로 불리는 욕설을 여러 차례 썼다가 일주일간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부설 유치원에서 교육을 받기도 했다.

 성장기 아이들이 뛰노는 것까지 막아야 하는지에 대해선 미국에서도 논란이 있다. 하지만 그 사례가 떠오른 건 잇따르는 군내 가혹행위 사건 때문이다. 최근 조사된 것만 봐도 군내에서 욕설과 폭행이 다반사고, 지난 4월엔 집단 폭행으로 윤모 일병이 숨지기까지 했다. 이런 사건의 가해 사병은 대부분 대학을 다니다 입대한 이들이다. 멀쩡하게 자란 젊은이들이 폭언과 구타를 일삼으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 것인데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이르는 국내 교육에서 남을 괴롭히는 게 얼마나 잘못된 행위인지 알려주지 못한 셈이다.

 외국에선 어린 시절부터 남을 존중하는 태도를 길러주는 데 집중한다. 미국 초등학교에선 학생들에게 양팔을 옆으로 뻗어 원을 그려보게 한 뒤 “거기까진 자신만의 공간이니 침해받아선 안 되고 남의 공간도 침범해선 안 된다”고 가르친다. 미국 일부 중학교 입학생은 ‘누구나 욕설을 듣지 않아야 하며 성별·인종·종교·장애 때문에 위협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서약서에 서명을 한다. 시애틀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더니 체육관 입구나 복도, 사물함 등 곳곳에 학생들이 만든 ‘괴롭힘 방지’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학교 측은 매월 생활지도를 하면서 “남을 괴롭히는 건 잘못이고 당하는 학생을 보면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뒤처지는 동료와 공존하는 태도 역시 입시 경쟁 위주의 한국 교육이 놓치고 있는 대목이다. 가혹행위 피해 사병 중엔 적응이 더딘 이가 많다. 숨진 윤 일병을 폭행한 가해 사병들은 “대답이 느리고 인상을 쓴다”는 이유를 댔다. 다른 사건에서도 업무와 훈련을 제대로 못한다며 구타나 폭언을 시작했다. 일본 초등학교에 자녀를 보낸 한 한국인 엄마는 “수학 시간에 교사뿐 아니라 잘하는 학생이 다른 친구에게 설명을 해주는데 도움을 받는 학생도 창피해하지 않아 신기했다”고 전했다. 뉴질랜드 학교에선 교사가 ‘이해 안 가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 한 명이라도 손을 들면 반복해 설명하는데 기다림을 불편해하는 아이가 없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게 당연하다는 자세를 익혔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교육을 시킬 방안을 시급히 마련했으면 한다. 먼 길처럼 보이지만 그래야 수년 후라도 모두가 안심하고 자녀를 군대에 보낼 수 있다.

김성탁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