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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양주군 주내면「별산대 놀이마을」|「인간문화재」만 8명|370여년 동안 "민속의 맥" 이어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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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여봐라 이놈.
-누가 나를 보고 이놈이라고 해. 나도 이륨름 분명한데.
-네 이름이 뭐란 말이냐.
-샌님이. 부르시기에 적당하오.
-적당하면 뭐란 말이냐.
-아당「아」자에 번개「번」자요.
-그놈의 이름 맹랑하구나.
-한번 불려봐요.
-「아자」「번자」야.
-「아자」「번자」가 어디있소. 붙여서 불러보시오. 하늘「천」따「지」하지말고「천지현황」하는 식으로 붙여서 말이오.
-아! 아! 아
-지랄하네. 누가「자리개미」(말임에 재갈물린 것)를 물었소. 어서 불러보시오.
-아버지.
-오냐, 잘 있었느냐. (이하 생략) 상놈이 이용자를 가지고 양반을 글방먹이고 있다.
아헙마당 첫 거리를 마치고 탈을 벗으니 상놈역의「말뚝이」는 새파란 20대 청년이요, 샌님은 60노인 박교응씨(양주별산대놀이 보유자).
『아따, 그 사람 탈춤 배운다고 늙은이한테 욕 한번 허벅지게 하네, 허허허. 탈춤묘미가 이런데도 있어.』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유양리는 향토오락의 첫째로 손꼽히는 양주별산대놀이(무형문화재 체2호)의 본 고장.
양주구읍 유양리에는 l백50여년 전 당시 연행(연행)되던 사직(사직)이 있었다. 예로부터 가면을 보관하던 당집이 있었고 그 앞에는 산골 물이 폭포를 이루어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는 선유동천이란 곳이 있다.
지금은 마을뒷산의 양지바른 터에 밭3백평을 다듬어 50여평의 전수회관이 들어서 있다. 2백가구 1천여 주민들에겐 영원한 마음의 휴식처이며 탈춤놀이의「메카」라는 긍지를 느끼는 곳이다.
이 마을의 인간문화재는 모두 8명. 박씨 이외에도 김상용(56·「말뚝이」) 신순봉(74·소무) 유경성(64·「미얄할미」) 고명달(71·「눈끔적이」) ▲노재영(50·「음중」) 함춘길(67·「목중」) 석거억(71·「피리」)씨 등 토박이 여덟 노인이 민속의 맥을 꿋꿋이 이어나가고 있다.
『우리 선배였던「말뚝이」이창유씨는 배꼽춤이 일품이었고「원보」역의 정한규씨는 재담으로 관중을 묶어놓았지. 이젠 하나둘씩 저 세상으로 가는구만.』
그 자신 칠순이 넘은 고명달노인은 기능보유자 모두가 고령이라 전수자 양성이 시급하다고 한다.
양주별산대놀이 보존에 대한 주민들의 열의도 대단하다.
이들은 별산대놀이 보존회(회장 유경성)를 구성, 마을 청년가운데 10명의 전수생을 뽑아 놀이역 별로. 연희(연희)를 전수시키고 있다.
보존회 회원들은 8년 전부터 전수회관을 세워 일요일마다 하루종일 이곳에서 마을청년들에게 별산대놀이의 기본동작·대사·춤 등을 자세히 가르치고있다.
고령의 연희자(연희자)들을 한층 기쁘게 하는 것은 70년대 이후부티 대학생들의 탈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때문. 방학철이면 서울을 비롯, 전국 각지의 대학생들이 10∼l5명씩「그룹」으로 찾아와 별산대놀이의 본고장에서 탈춤을 배운다. 「그룹」당 수강료는 10일에 15만원정도.
『젊은이들이 우리의 민속을 이해하고 초상의 얼을 익히겠다는데 그만 눈물이 솟을 만큼 고마와요』-. 지금까지 이곳에서「길놀이」「고사장면」응13과장(과장)을 체대로 배워간 학생들만도 2천 여명.
보존회장 유씨는『이제야 탈춤이 신분을 초월한 대중문화가 되는 것 같다』며 흐뭇한 표정이다.
판소리가 한(한)을 표현한 예술이라면 탈춤은 신명풀이의 총합예술. 소리가 있고 악기가 있고 의상과 탈춤이 한데 어울린 서민들의 예술이다.
양반을 언청이나 문둥이로 분장시기는 철저한 조롱과 모욕이 번뜩이는가하면 남녀의 갈등, 인생무상의 탄식이 어깨짓·고개짓·온몸의 놀림에서 연출되고 있다. 따라서 별산대놀이는 양반들의 외면 속에 평민들만의 놀이로 이어져왔다.
정월대보름·4월초파일·5월 단오·8월 추석 등 대소명절이면 온 주민이 빠짐없이 참석하는 대축제가 이 탈춤놀이이기도 하다. 양주 별산대놀이는3백70년 전 임진왜란 직후부터 이 마을에서 공연되기 시작했다.
당시 양주군 현청이 있던 이 마을에 유적지목사가 부임하면서 한양 본산대(본산대)를 초청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양주 별산대놀이에 등장하는 인물은「상좌」「목중」「완보」(완보)「옴중」「눈끔적이」 「샌님」「말뚝이」「쇠뚝이」「소무」(소무)「노장」(노장)「애사당」「포도부장」등 29역이 이들이 사용하는 가면은「말하는 탈」12개와「말 못하는 탈」10개등 모두 22개. 북·장고·해금·젓대·피리 등을 5명의 악사가 연주하는데 산대놀이의 춤은 염불곡에 맞추어 추는「그드름춤」과 타령조에 맞추어 추는「깨끼춤」등 2가지.
농사가 주업인 마을의 가구 당 소득은 3백50만원으로 비교적 부촌에 속하지만 탈춤 배우려는 학생들을 무료로 받을 만큼 넉넉지 못해 안타깝다고「눈끔적이」고씨는 말한다.
전수회관에 상수도시설은 돼있으나 물이 나오지 않아 전수회관에서 기거해야하는 외지 학생들은 1km쯤 떨어진 마을 우물까지 나가 물을 길어다 쓰고 있다.
또 전수회관을 무대 중심으로 짓다보니 방이 1개밖에 없어 단체로 온 대학생들의 숙박이 불편한 것도 문제.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예 마을에 민박을 하며 탈춤마을의 인심도 배우고 있다. <양주=엄주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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